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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길은 복잡하지 않다  [2009-12-11 16:12:17]
 
  길은복잡하지않다_표지_소
 

[시사투데이 정명웅 기자] 

이 책은 이갑용 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노동운동에 대한 뼈아픈 성찰의 기록이며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1984년부터 2009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노동운동에 대한 기록이다. 현대중공업 위원장에서 민주노총 위원장, 울산 동구 구청장을 지내고 현재 현대중공업 해고자로 살고 있는 그는 노동운동의 핵심에서만 알 수 있고 경험한 이야기들을 통해 진보운동과 노동운동이 왜 위기에 처해 있는 지를 진단한다. 저자가 노동운동과 민주노총을 사랑하는 방식은 내부의 문제를 쉬쉬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드러내 뼈저린 반성을 통해 혁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구청장의 경험을 통해 노동자 정치의 예를 들어주고 있고 노동운동가들이 어떻게 자본에 의해 명멸해가고 자본은 어떻게 노동자들을 길들이는가에 대해서도 실명비판을 통해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어떻게 이 사회의 분배 구조를 바꿔냈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87년 7·8·9 노동자 대투쟁은 6월 항쟁 못지않은 항쟁이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몇 개 생기고, 몇 명이 파업을 벌였다는 통계로만 얘기될 뿐, 그것이 가져온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한 얘기는 없다.
 나는 내 경험을 바탕으로 노동자들의 투쟁이 어떻게 분배 정의를 이뤄냈고 사회 발전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 말하고 싶었다. 노동자들은 늘 자신의 역사를 남에 의해 평가받고 자리매김 당해왔다.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자 대투쟁의 의의, 그것이 이 글을 쓰게 된 두 번째 이유이다. 생각해보면 해고 사유가 뭔지, 대규모 감원을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회사가 자르면 잘리나 보다 다른 직장 찾아야지 하며 너무 순하게들 떠났다. 머리카락 잘리고 조인트 까이는 걸 예사로 여기는 곳에서 일하다 보니 노동자의 권리 같은 건 생각하지 못했다. 회사란 당연히 그런 것이고 회사의 주인은 사장이니 사장이 나가라면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굴종이 내면화되어 있었다. 그저 내가 살아남은 것에 안도하며 쫓겨난 사람들도 곧 잊게 되었다. 공장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돌아갔다.

 5월 10일, 우리는 골리앗에서 내려왔다, 14일 만에. 골리앗에서 내려오는 우리를 전국에서 뜨겁게 지켜보는 것도 몰랐고 우리 싸움이 위대하다고 역사에 기록될 줄도 몰랐다. 포위되어 갈 곳 없던 우리 앞에 골리앗이 있었고 그저 버틸 수 없어 내려왔다. 우리는 위대하고 싶어 오른 게 아니었다. 하지만 한 가지 최선을 다했다. 완패했지만 때론 잘 진 싸움에서 이긴 싸움보다 더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걸 골리앗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김대중 정권은 IMF 사태를 만든 주범인 재벌은 놔둔 채 ‘국민’ 이라고 불리는 노동자들에게 그 책임을 떠넘겼다. 국민은 영문도 모른 체 장롱 속 금붙이를 나라에 바쳤고, 일터에서 무차별적으로 쫓겨나야 했다. 나라가 망하는 판에 그깟 일자리 하나 잃는 것쯤은 악 소리도 못 낼 일이었다.

 우리는 정부에서 떠드는 대로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나라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해고된 남편 대신 생계를 위해 접대부 생활을 해야 했던 어느 여성 가장이 목격한 것은 고급 술집에서 강남의 부자들이 술잔을 부딪치며 외치는 '이대로' 라는 환호였다.

 구청장 때도 마찬가지였다. 특별히 양복을 입을 일도 없고, 불편하기도 해서 집에 있는 잠바에 구청 마크를 박아서 입었다. 그랬더니 아주 편하고 좋았다. 사람들은 구청장이 되었으니 이제 양복을 입어야 하지 않느냐고 했지만, 나는 왜 양복을 입어야만 격이 맞는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이다. 노동자가 노동자의 옷을 입는 게 예의에 어긋난 것인가? 오히려 어설프게 정치인 흉내를 내면서 노동자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양복 입는 노동자 출신 정치인들이 더 우스운 것 아닌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이 사회의 왜곡된 분배 구조를 바꿔낸 것은 민주화 투쟁을 통해 독재 정권을 몰아낸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에 기여한 것이다.

 작가는 958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해병대를 제대하던 1981년 5월 말, 광주에서 강제로 징집되어 온 장기하사들에게 “작년에 광주 빨갱이 놈들 때문에 날마다 비상근무 서느라고 잠도 못 자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며 애먼 분풀이를 하던 반공 청년이었다. 노동조합을 하면서  ‘광주 사태’가 아닌 ‘광주 항쟁’임을 알게 되었고 그날의 부끄러운 분풀이를 사죄하고자 열심히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

 1984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1987년 노동조합을 만난 이후 대의원, 교섭위원, 운영위원, 사무국장, 비상대책위원장, 위원장까지 노동조합의 공식 직책을 차례차례 밟으며 노동운동가로 단련되었다. 비공식 학습이나 지하 서클의 이념 교육을 받지 않은 탓인지 소련 사회주의가 몰락했을 때도 충격 없이 노동조합 일에만 집중했다.

 1998년 민주노총 위원장을 한 후 2000년 국회의원 후보로 나왔다 떨어졌고, 2002년에는 노동자 출신으로는 최초로 구청장(울산 동구)에 당선되었다. 늘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는 징크스가 있는데 안정되게 임기를 채울 줄 알았던 선출직 구청장 자리마저 2004년 공무원 노조에 대한 징계를 거부해 중도사퇴 당한다.

 사나이들의 세계야말로 의리가 아닌 권력과 이권에 의해 움직여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걸 어떻게 드러내서 바꿔볼까 궁리하고 있다. 권력을 위해 이합집산하는 민주노총의 정파 조직들을 혹독히 비판한 대가로 별명처럼 ‘외로운 늑대’로 살고 있다. 외롭지만, '유연한 좌파'나 ‘부드러운 직선’ 보다, 그냥 '좌파'와 '직선'인 삶을 좋아하며 자본주의에서 사는 한 언제나 싸움은 현재 진행형일 뿐 ‘후일담’은 없다고 생각한다.

 

 

정명웅 기자


[2009-12-11 1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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