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적인 예술가를 만나다. 무한한 모험가 ‘김명곤’

김영은

news25@sisatoday.co.kr | 2005-10-06 13:15:46

김명곤 극장장

1983년 영화 을 통해 데뷔한 배우 김명곤은 다방면에서 무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1986년부터 1999년까지 극단 아리랑을 창단한 대표로 활동하면서 소외된 연극 문화에 열정적으로 참여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객원교수로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 일에도 몰두했다.

현재는 국립극장 극장장으로서의 역할도 해내 주위의 기대와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 성과로 지금까지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과 자랑스런 서울시민상, 현대연극상 연출상 등 배우로서, 연출자로서, 그리고 지식인으로서 우리 예술과 민족극을 알리는데 집중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1993)를 통해 더 잘 알려진 그의 재능은 판소리와 탈춤, 장구와 북에 이르고 있으며 한국인의 저변에 깔린 전통적인 민속 문화에 많은 관심과 재능을 보이고 있다.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이 최초로 판소리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 (1999)에서 김명곤은 각본을 쓰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의 각본 작업과 함께 민속학자와 사학자들이 영화의 고증작업에 참가하고 30여억 원에 이르는 제작비를 들여 옥사와 요리 등 당대 생활상을 그대로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는 성과를 얻었으며 국내외 평론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예술의 폭을 한층 넓힌 예술인 예술을 사랑하는 지식인

김명곤은 “대학교 3학년 때 연극 활동을 하면서 우연히 판소리에 빠져들었다. 광대로 불렸던 명창 故 박초월 선생님께 판소리를 익혔다. 그런 배움을 바탕으로 배우를 하면서도 소규모의 극장을 운영하고 연출과 극작, 제작 등의 활동을 통해 예술의 폭의 넓혔다.”고 술회했다.

한 일간지에서 ‘신자유주의 체제 하의 젊은 파우스트들’이라는 제목의 시론을 통해 김명곤은 “사회적 신뢰는 무너지고 악순환의 고리는 더욱더 커져 가기만 한다.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명제도 경제의 효용성이라는 명제에 가려 더 이상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듯하다. 사회적 복지와 고용의 유연성을 고려하지 않은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가 몰고 온 이 부작용을 치유할 묘약은 없는 것인가?”라며 현 사회에 대해 예리하고 정확한 관점을 제시한 바 있다.

이런 그의 비판에서 그에게 주어진 역할인 배우와 연출자, 극장장이기전에 예술을 사랑하는 예술인, 현 세태에 고뇌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국립극장은 전통과 민족 예술을 창작하는 곳

국립극장장으로서 그에게 주어진 과제는 ‘어떻게 하면 시민들이 예술을 가까이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가’였다. 그 결과 국립극장은 계절에 맞는 아이템으로 꾸민 축제를 기획해냈다. ‘열대야 페스티벌’ 등의 계절 축제를 이용해 시민들이 보다 쉽게 다양한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지난 2000년 처음 시작된 여름 축제 ‘열대야 페스티벌’은 매년 3만 명이 넘는 시민이 찾아오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는 그가 부단하게 노력하고 고심한 흔적이다.

김명곤 극장장이 취임한 후 국립극장은 ‘토요문화광장’이나 봄 축제 ‘꽃바람 신바람’ 등 요일별, 계절별로 무료 축제를 다양하게 확대했다. 매년 여름 펼쳐지는 여름 축제의 경우 김명곤이 가장 좋아하는 축제로 한창 녹음이 우거져 푸른빛을 내뿜는 국립극장의 야외에서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잔디에 앉아 문화 공연을 즐기는 재미가 색다르다. 그는 “야외 잔디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음악을 감상하는 그 기분은 그야말로 최고다.”라며 색다른 즐거움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극장장인 그는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편벽되지 않는 리더로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국립극장이 전통과 민족 예술을 창작하는 역할을 앞으로도 해주길 바란다. 이제 올해로 극장장의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대중과 친숙한 공연, 계층별, 특히 젊은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레퍼토리의 공연을 만들어 예술을 활성화시키는데 아낌없이 노력할 것이다.”라며 계획을 밝혔다.

김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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