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하숙집 삼겹살 파티 하는 날!
장수진
news25@sisatoday.co.kr | 2010-02-08 14:48:09
[시사투데이 장수진 기자] '하숙’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청춘이 떠오르고 마당 한 켠에 수도가 있는 양옥집, 엄마 같고 고향 같은 주인아줌마, 그리고 룸메이트...
요즘 하숙생들은 왜 No, No! 라고 두 손 번쩍 들어 손사래 칠까? 하긴 요즘엔 하숙집도 예전과 달리 기업형으로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라 정감과는 거리가 멀지도 모르겠다.
또한 무엇보다 독립된 공간을 중요시하는 세대이다 보니 타인과 방을 같이 사용하고 화장실, 욕실 등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 싫어 원룸이나, 고시텔을 선호하는 학생들도 많다고 한다. 같은 하숙집에 거주하면서도 하숙생들끼리 학교에서 마주쳐도 모른 척 지나가기 일쑤고 서로 같은 하숙집에 입주한 하숙생 그이상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주인아주머니와의 관계는 어떨까? 주인은 주인대로 식사시간 꼬박 지켜 밥을 해놓고 하숙생은 정해진 시간 안에 식사를 마쳐야 한다. 그것도 주인아주머니가 차려 준 밥상에 둘러 앉아 먹는 것이 아니라 직접 먹을 만큼 그릇에 담아 밥만 먹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할 일을 한다. 무엇보다 하숙생들은 식사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끼니를 다른 곳에서 해결해야 한다. 타지에 보낸 자식이 끼니를 거를까, 자취가 아닌 하숙을 선택한 부모들은 어찌 사람 인심이 저리 야박하냐고 야속해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숙을 살림에 보탤 요량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으로 하는 사람들로선 나름의 원칙과 규칙을 정해서 운영해야하니 어쩔 수 없으리라.
그런 대부분의 하숙집과 달리 주인아주머니의 넉넉한 인심과 마음이 느껴지는 하숙이 있어 눈길을 끈다. 신촌 연세대 주변 하숙집의 상호로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하숙집 간판. 오렌지의 상큼한 향이 톡 터져 퍼질 것 같은 하숙집, 오렌지하숙이다.
황정현 학생이 삼겹살을 굽고 있을 무렵 한 여학생이 내려왔다. 자고 일어난 모습으로 내려오자마자 “엄마”하고 권씨를 껴안았다. 마치 딸이 엄마에게 “엄마, 피곤해 안아줘!”하고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았다. 권씨는 여학생을 꼭 안아줬다. 여느 하숙집하곤 다른 풍경이었다. 한명, 두명 하숙생들이 모여들었다.
서로 둘러 앉아 식사를 하며,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농담도 주고받는 모습이 정겨워보였다. 삼겹살은 구워지기 바쁘게 사라졌다. 하숙생들은 서로 정보 교환도 하고 많은 것을 공유하는 듯했다. 공부를 하다가도 스트레스가 쌓이면 함께 노래방에도 가고 당구장에도 간단다. 주인아저씨가 다양한 종류의 술을 들고 오셨다. 하숙생들 취향에 맞게 잔에 술이 채워졌다. 함께 건배를 나누고 즐거운 저녁식사가 계속되었다.
처음 이곳에 입주한 학생들은 서로 낯을 가렸다고 한다. 다른 곳에서 하숙을 했을 때처럼 생각하고 지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가족처럼 대해줘 지금은 서로 편하게 지낸다고 한다. 한 하숙생은 친구가 오면 함께 식사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셔서 친구가 부러워하기도 했단다. 황정현 학생은 아주머니가 엄마처럼 챙겨주셔서 좋고 다른 하숙집은 같은 전공의 하숙생인데도 서로 아는 체도 안한다며 서로 잘 지내려면 아주머니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이자헌(이대, 한국무용과4년)학생은 자취를 할 수도 있는데 하숙을 하는 건 영양적인 측면에서 잘 챙겨먹으려는 건데 대부분 하숙집이 식사 시간에 늦으면 식사 제공을 하지 않는데 이곳은 늦어도 식사를 하고 올라가라고 한다며 정말 엄마 같은 분이라고 했다. 엄마처럼 넉넉한 인심으로 하숙집을 운영하는 권씨에게도 원칙이 하나 있다. 바로 이성 친구를 룸에 데리고 오지 않는 것이다. 집과 부모를 떠나 자칫 절제하지 못하고 무질서한 생활을 하기 쉬운 때에 권씨의 원칙은 자식을 멀리 보낸 부모들의 마음이 아닐까.
각박한 세상, 자신의 편리와 개인주의적인 사고가 만연해 있지만 그래도 아직 서울 도심에 따뜻한 마음으로 배려하고 어울려 사는 맛을 배워가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 하숙생활의 추억이 오렌지하숙생들의 가슴 한구석에 새겨지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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