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보험이다…글로벌 브랜드의 탄생비화를 말한다

김애영

| 2018-12-06 18:31:50

왼쪽부터 ▲김동길 이사 ▲김정남 대표 ▲박천민 이사 ▲이병건 이사

[(주)제이앤씨트레이딩] 친구는 보험이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니던 시절, 그때는 다들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다. 시골에서 온 친구나 서울에 살던 친구나 대학에 진학은 했으나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 때문에 늘 용돈이 부족했다.

그들 4명도 예외 없이 부족한 용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렇게 모이기 시작했다. 밥값이 늘 모자라니 학교 벤치에 모여 도시락을 나눠 먹거나,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던 친구 집에 모여 라면을 끓여 한 끼 때우기도 했고, 술 한 잔이 생각나면 학생증을 맡기고 김치 깍두기에 막걸리 한잔씩 돌리면 금방 행복해졌다. 어쩌다 그러는 것이 아니고 매일을 그렇게 살다 보니 서울 사는 친구의 도시락은 늘 밥으로 꽉꽉 눌러져 있었고, 누군가의 학생증은 늘 학교 앞 선술집에 맡겨져 있었다.

비싼 등록금 조달하기가 버거우니 당연히 학기 도중에 군대에 입대했고 다들 같은 시기에 복학하여 어려운 대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회사에서도 도시락을 나눠먹을 요량인지 어느 날 정신 차려보니 다들 ‘삼성엔지니어링’이라는 한 회사에 모여 있었다. 인연인지 취향인지 헷갈리지만 학력고사 시대에 친구로 떼 지어 다니다가 인생행로까지 그렇게 한 묶음으로 엮이고 있었고 그들은 순순히 그 인생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쭉 이어질 줄 알았던 대기업회사원 인생에 갑자기 끼어든 IMF, 그리고 ‘삼성장학생’으로서의 옵션기간도 끝나면서 하나둘씩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나기 시작한다. 하지만10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나온 그들 앞에 창업 이외의 선택지는 사실상 없었다. 돈 버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던 엔지니어들, 그나마 해외영업팀, 해외사업팀, 기술팀 등을 두루 섭렵하며 경험한 약간의 업무지식을 무기로 그들은 결국 다시 뭉치게 된다. 회사를 세우며 황량한 사회에 무모한 도전을 시작한 배경은 단 하나, 친구가 있으니까. 옆자리에 함께 손가락 빠는 오래된 친구가 있으니까. 친구가 보험이니까.

고려대 83학번으로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던 그들 네 명은 10평짜리 썰렁한 사무실을 하나 얻어 맨주먹에 도시락 하나씩 들고 그렇게 다시 모였다. 엔지니어링 회사에 기계 납품이라도 하면 먹고는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지금부터라도 우리만의 아이템을 찾겠다는 간절함으로 무역회사인 ‘제이앤씨트레이딩’이 탄생하게된 것이다.

‘네떼루마니’를 품다.

1999년에 일본에서 기발한 제품이 등장했다. 나무를 태워 그 연기를 응축시키면 목초액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분말화해 발바닥에 붙이면 몸속의 노폐물을 흡수하는 네떼루마니라는 수액(樹液)시트가 발명된 것이다. 발바닥뿐만 아니라 신체 중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몸 어느 곳에 붙여도 하룻밤만 지나면 몸이 개운해지는 효과 때문에 입소문을 타고 일본에서 연일 판매 신기록을 세우며 불티나게 팔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 제품의 한국 판매권을 획득하고자 대기업을 포함한 수많은 기업이 네떼루마니를 찾아가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수액시트의 발명자 나가타(永田) 사장은 철저한 인본주의자로서, 네떼루마니의 파트너로 장사에 능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친구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네 친구들의 대표였던 김정남 사장의 ‘친구가 보험이다’라는 촌스런 철학은, 나가타 사장이 원하던 인생철학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것이었다. 반년간의 거래 후 의기 투합한 나가타 사장과 김정남 대표는 진정한 친구가 되었고, 22세의 나이차이가 걸림돌이 되자 나가타 사장은 본인의 친인척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나가타 사장 본인과 김정남 대표를 어머니와 양아들의 관계로 선언하게 된다.

또한 네떼루마니의 제조 및 전 세계 판매권을 제이앤씨트레이딩에 넘기게 된다. 이렇게 수액패치 발명자의 지원을 등에 업은 한국의 네 친구는 한국에 전초기지 공장을 세우고 브라질 청정지역에서 공수되는 유칼립투스 목초액, 아가리쿠스버섯, 토르말린을 주원료로 하는 수액시트의 원조이자 제조특허 제품인 네떼루마니를 생산하며 일본과 한국 시장을 석권한 뒤 세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세상은 넓다.

때마침 미국에서 일기 시작한 디톡스(detox) 열풍은 북미대륙에 네떼루마니를 정착시키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동양에서 온 새로운 발명품은 ‘네루’라는 브랜드로 홈쇼핑 및 미국의 대표적인 드럭스토어 체인점인 Walgreen, Riteaid 등 5개의 대형 드럭스토어 체인점을 통해 미국 전역으로 무섭게 퍼져나갔다.

미국 FDA가 원하는 사양에 맞추기 위해서 네루는 더 크고 더 위생적인 공장이 필요하게 됐다. 그래서 사업 8년 만에 파주공장에서 충주에 네떼루마니 전용공장을 다시 짓게 됐다. 대지7000평에 산뜻한 새 건물과 새 기계로 단장한 충주공장에서 나가타 사장과 네 친구는 그렇게 다시 모여 해외 OEM 브랜드로 무려 20여개의 상표로 수액피치를 만들었다. 계속해 제품을 개선한 일체형 신제품을 만들어내자 이번에는 유럽에서 주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집에서도 신발을 거의 벗지 않는다. 그런 현지인들이 잠자기 전에 직접 신발과 양말을 벗고 네떼루마니를 붙이고 잠자리에 드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동양의 이 자그마한 발명품 하나가 서구사회의 잠자리 문화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네떼루마니가 먼저 정착한 곳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신문배달처럼 의약품을 가정에 공급해주는 오키구수리(置き薬라는 독특한 전통이 있다. 일본에서는 네떼루마니가 20년 동안 팔리면서 오키구수리를 통해 캬베진이나 정로환처럼 가정상비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서양에서는 동양의학의 반사구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네떼루마니가 인식되었다. 아랫배가 아플 때 발바닥 중심을 강하게 눌러주면 아픔이 가시고, 무릎이 아플 땐 무릎은 물론 손바닥과 팔꿈치에도 침을 놓는 그런 개념이다. 서양인들은 보지도 못했던 이런 반사구 원리로 몸이 가벼워지고 통증이 가시는 네떼루마니는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이 있었고 세계 시장은 동양의학과 대체의학의 신비함으로 구매가 끊이지 않았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유럽에서도 20년 가까이 네떼루마니가 사랑받는 이유다.

사람이 먼저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한 때 유사 저가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수액시트·발바닥패치 시장 전체가 신뢰를 잃고 구매자가 현저히 줄었었다. 검증되지 않은 싸구려 원료를 쓰면서 신비한 만병통치약으로 과대광고를 일삼는 저가제품들의 얄팍한 상술행태 탓에 수액시트시장은 일순간 외면받기에 이르렀다.

한국시장이 침체기를 겪으며 네 친구에게도 시련이 왔다. 몸집이 커졌는데 수익이 줄면 누구나 경험해야 되는 갈등이 손님처럼 찾아왔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네 친구는 어려울 때마다 맨주먹시절의 초심으로 돌아간다. 나는 저놈들에게 보험을 들어 놨는데 당장 어렵다고 보험을 해지하면 눈앞의 이익은 있을지 몰라도 인생의 철학을 바꿔야 하는데... 기회는 위기에서 온다. 유사 저가제품의 과대광고 위기 속에서 국내시장은 초토화되었지만 이를 기회로 한국의 네 친구는 열정 하나로 똘똘 뭉쳐 미국과 유럽, 일본 시장에서 네떼루마니를 명품의 반열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그렇게 함께 지내온 세월이 36년이었고 그중 20년을 네떼루마니와 함께 했다. 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가 밤낮을 함께하며 만들어내는 네떼루마니는 넷의 도시락이었고 보험이었고 이제는 인생이다. 오늘도 허드렛일을 함께 하고 있는 네 사람의 발바닥에는 네떼루마니가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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