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의거 110주년…러시아 극동지역 신문기사 공개

김균희

| 2019-05-29 10:13:29

달리니 보스톡, 1909년 10월 15일(10월 28일)

[시사투데이 김균희 기자] “죽음이 두렵지 않다. 고문도 두렵지 않다. 나의 이성과 심장은 너희들에 의해 병들었다. 죽으면서 나는 기쁘다. 나는 조국 해방의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다”

일제의 첫 심문부터 사형집행까지 안중근 의사의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과 발언 내용 등을 소개한 러시아 언론 보도가 확인됐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지난 28일 설립 50주년 및 공공기록물법 제정 20주년을 맞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하바로프스키 등의 지역신문이 보도한 안중근 의사 관련 기사 24건을 공개했다.

공개된 기록물은 국가기록원이 지난 2015년 독립운동과 우리 동포의 기록물이 다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 극동지역을 대상으로 기획해 수집하던 중 발굴됐다. 안 의사 의거일 다음 날인 1909년 10월 27일부터 1910년 4월 21일까지 안 의사 관련 보도다.

신문에는 시종일관 의연했던 안중근 의사의 모습, 차이쟈고우에서의 의거 준비, 체포과정, 하얼빈 의거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인식 등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달리니 보스톡지(紙)’는 의거일 이틀 뒤인 1909년 10월 28일자에 ‘26일 아침 9시 최전선 열병식에 참석하기 위해 하얼빈역에 도착한 이토 공작(당시 조선 통감)은 치명적 총상을 입었고 조선인으로 밝혀진 범인이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보스토치나야 자랴지(紙)’ 11월 2일자와 4일자는 일본 총영사관에서 있었던 첫 심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당신들의 고문도 두렵지 않다. 나의 이성과 심장은 조국에서 일본인들에 의해 병을 얻었다. 죽으면서 나는 기쁘다. 나는 조국 해방을 위해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다’, ‘이토 사살은 우리 조국 역사의 마지막 장이 아니며 아직 살아 있는 것이 기쁘며 나의 유골에 자유가 비출 것이다’라고 말한 안 의사의 진술을 그대로 실었다.

또한 안중근 의사가 현장을 지휘하는 러시아 장교에 의해 기차역으로 옮겨진 뒤 감옥으로 이송되는 과정도 상세히 보도했다. ‘쁘리 아무리예지(紙)’ 11월 6일자는 1일 있었던 이송상황을 구체적으로 전하고 있다. ‘기차에 오르는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의 발에 족쇄가 채워져 있었고 안중근은 손에 수갑까지 채워져 있었다. 열차에는 마지막으로 안중근이 올라탔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완전히 무관한 모습을 보였다’고 묘사했다.

특히 안중근 의사의 매장지에 대한 보도기사가 주목을 끈다. ‘우수리스까야 아끄라이나지(紙)’ 1910년 4월 21일자는 안중근 의사는 사형 직후 교도소의 예배당으로 옮겨졌다가 지역의 기독교 묘지에 매장된 것으로 보도했다. 종전 안중근 의사의 매장지는 교도소 내의 묘지로 알려져 있었다.

이소연 국가기록원장은 “안중근 의사와 하얼빈 의거에 대한 러시아의 인식뿐만 아니라 의거 준비, 체포와 일본영사관 인계과정 등 사후 조치 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돼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안다”며 “안중근 의사 의거 110주년을 맞아 독립정신을 실천했던 안 의사의 의연하고 당당한 모습을 국민과 함께 하고자 공개하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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