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땐 늘 여직원에 '춤춰라' 강요"…발전소의 성차별

김애영

| 2019-12-11 18:53:45

국가인권위원회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교육센터에서 '석탄화력발전산업 노동자 인권 보장을 위한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20191211

[시사투데이 김애영 기자] "체육대회 같은 거 한다고 하면 여직원들이 나와서 응원해주고 해야지 뭐 이런 식으로…상 주는 자리가 있을 때도 여직원들한테 항상 꽃을 주라는 식으로 진행합니다."

"연말에 사내행사를 하면 여성 신입사원에게 강제로 춤 연습시키고 재롱잔치를 하게 했습니다. 2명의 사장이 다녀갈 동안 신입 여직원들이 춤추는 재롱잔치를 매년 해야 했습니다."

남성노동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발전소에서 여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차별적 언행과 행위가 업무회의와 식사, 회식자리를 구분할 것 없이 일상적으로 이뤄졌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은 11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개최한 '석탄화력발전산업 노동자 인권 보장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석탄화력발전산업 젠더 차별 및 노동자 건강권 침해 사례 조사 결과'를 전했다.

이에 따르면 발전소의 남성화된 조직문화에서 여성노동자를 향한 차별이 존재하지만, 수적으로 소수인 여성노동자들은 차별에 대한 인식이 흐려져 자신들이 겪는 차별과 불평등을 차별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 연구원은 "발전소에서 근무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차별에 대한 인식이 명확하지 않다"며 "현장 정규직 여성노동자들 역시 하청노동자, 2차 하청노동자 등에 비해 상위에 속한다고 생각해 자신들이 겪는 차별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상적인 여성 차별 문화가 굉장히 많았다"며 "체육대회를 하면 여성노동자들에게 응원을 시키고, 강제 댄스나 술접대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전 연구원은 "남성노동자 위주의 사업장에서는 사무직군에 여성들이 집중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화학·기계 등 현장 직군에 생각보다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포진해 있었다"면서도 "그러나 남성노동자에 비하면 소수인 만큼 타깃의 대상이 될 수 있어 이 자리에 여성노동자를 모시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는 여성노동자를 대상으로 비공개 인터뷰를 진행해도 다음날 발전소에서 '누가 인터뷰를 했는지' 색출 작업이 이뤄진 경우까지 있었다는 전 연구원의 설명이다.

수적 열세인 여성노동자들은 화장실·세면장 등 공간적 부분에서도 열악한 환경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화장실이나 휴게공간이 제대로 마련되고 있지 않으며, 그나마 마련된다고 하더라도 화장실·샤워실·탈의실·휴게공간이 모두 한 공간 안에 몰려있는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공간으로 배치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에 의하면 '사업을 타인에게 도급하는 자는 수급인에게 위생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거나 자신의 위생시설을 수급인의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적절한 협조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 연구원은 "특히 하청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일하는 일터, 휴게실, 사무실 등이 자기 회사 소유가 아니라 설비 개선 등의 권한이 없다"며 "하청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휴게공간이 있을 리 없고 화장실도 제대로 없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원청과 하청의 공간상 불균형으로 인해 설비에 대한 권한이 전혀 없는 하청 남성노동자와 하청 여성노동자 사이에서의 공간 경쟁도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 연구원은 "제대로 된 샤워실이 없어 하청 남성노동자들이 하청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여자화장실을 개조해서 샤워실로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며 "여성들은 근무장에 화장실이 없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다른 부서로 이동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처럼 공간을 둘러싼 경쟁과 배제가 많이 이뤄졌지만 수적 열세인 하청 여성노동자들은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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