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즉시 종전' 압박 불구, 우크라·러시아 극단적 평행선 달려
전해원 기자
sisahw@daum.net | 2025-10-21 09:27:47
[시사투데이 = 전해원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신속한 종전을 압박하고 있으나 양국이 영토 문제를 두고 극단적인 평행선을 달리면서 휴전 합의에는 전혀 진척이 없어 보인다.
20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백악관 회담에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트럼프의 불만은 젤렌스키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제시한 종전 조건을 거부한 데 있었다.
그는 젤렌스키에게 "당신은 전쟁에서 지고 있다. 푸틴이 원하면 당신을 파멸할 것"이라며 푸틴이 하루 전 전화 통화에서 내건 제안대로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 전체를 러시아에 넘기라고 강요했다.
미국, 유럽,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에 따르면 트럼프는 회담 내내 젤렌스키에게 단도직입적이었으며, 때로는 좌절감을 드러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측이 가져온 전황 지도를 보지 않겠다며 옆으로 내던지기까지 했다.
트럼프는 젤렌스키에게 자신의 최우선 과제는 전쟁을 끝내는 것이며 어떤 특정 영토 결과에도 얽매이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했다. 또한 우크라이나가 장거리 순항미사일 토마호크를 곧 받게 될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트럼프의 압박에도 접점을 찾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영토 문제에 대한 양측의 극단적인 견해차 때문이다.
러시아는 평화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현재 무력으로 점령하지 못한 지역까지 포함해 돈바스 지역 전체에서 우크라이나가 완전히 철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무력으로 빼앗기지 않은 영토를 양보하는 것은 재침공의 발판을 제공하는 것과 같으므로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을 끝내는 신속한 승리를 원하지만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전면 점령을 원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가올 푸틴 대통령과의 헝가리 정상회담을 앞두고 '친푸틴' 행보를 보이자 공화당이 주도하는 미국 의회에서는 대러시아 제재 추진이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공화당의 존 튠 상원 원내대표는 이날 트럼프-푸틴 정상회담 이후까지 새로운 대러시아 제재 법안의 심의를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이 법안은 러시아 에너지를 수입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지 않는 국가에 대해 최대 500%의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등 트럼프 행정부 각료들은 추가 제재가 푸틴을 협상 테이블에서 떠나게 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며 제재안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여왔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다만 튠 원내대표는 이번 정상회담이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제재 법안은 언제든 러시아를 압박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종전 압박에 직면한 젤렌스키 대통령을 지원하기 위해 유럽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럽 각국은 러시아의 동결된 자산을 활용하고 러시아에 추가적인 제재를 가하는 방안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 동결 자산을 이용해 우크라이나에 1천400억 유로(약 231조원)의 대출을 제공하는 방안을 오는 23일 정상회의에서 논의할 예정이다.
데이비드 반 빌 네덜란드 외무장관은 "EU는 군사 지원을 제공하고, (동결된 러시아) 금융 자산을 어떻게 활용해 우크라이나에 재정적 숨통을 트여줌으로써 우크라이나가 협상 테이블에서 가장 유리한 패를 쥘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 노엘 바로 프랑스 외무장관은 푸틴이 EU 영공을 통과해 헝가리 정상회담에 참석하려면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휴전에 동의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처럼 유럽 각국은 트럼프의 중재 노력과 별개로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결집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19일 "만약 미국이 협상의 중심을 잡는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라며 "하지만 모든 압력이 오로지 우크라이나에만 가해지는 구도라면, 아무도 승자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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