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국내입양 아직도 제자리걸음

박지혜

news25@sisatoday.co.kr | 2006-02-03 16:56:01

입양현황

- 국민 의식은 높아지지만 실천은 역부족 -

지난해 12월 혹한과 함께 꽁꽁 얼어붙은 우리의 마음을 녹인 가슴 따뜻한 소식이 전해졌다. 탤런트 차인표 · 신애라 부부가 아이 입양을 공개적으로 발표해 세인들로 하여금 놀라움과 함께 감탄을 자아냈다.

이와 더불어 최근에 국내입양에 대한 실태가 재조명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간 입양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 왔다. 특히 국내입양의 경우는 타인의 눈을 의식해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혈연이라는 전통적인 관념에 사로잡혀 ‘입양은 자식을 못 가지는 가정에서 어쩔 수 없이 대를 잇기 위한 수단’이라는 생각이 아직까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입양 가정에서는 아이가 자라면서 입양 사실이 탄로 날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몇 년 전부터 각종 단체와 TV매체에서는 국내입양 홍보에 대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현재까지도 입양아에 대한 막연한 노파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마음을 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지난 2000년 ‘국내입양 활성화를 위한 국제세미나’에서 경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배태순 교수는 ‘한국의 국내입양 현황과 활성화를 위한 입양법 개정 및 제도개선 방안’이라는 주제로 한 강연을 통해 “한국의 국내입양은 가정이 없는 아동에게 가정을 제공해 주는 아동의 복지적 측면보다는 아동이 없는 가정에 아동을 제공해 준다는 입양부모 중심적인 실무가 돼 왔다”고 지적하고 “국내입양의 발전을 위해서 인가받은 입양기관을 통해서만 입양이 가능해야 하며 입양아동이 입양부모의 친자로 호적에 입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입양아동에게 적절한 시기에 입양사실이 알려져야 하며 위탁가정을 개발해 신생아만이 아니라 입양하기 힘든 장애아동도 입양이 가능토록 하는 것이 국내 입양발전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강조한 바 있다.

국내입양의 현주소

국내입양 건수는 해외입양에 비해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것은 물론 장애아와 3세 이상 성장 아동에 대한 입양은 사실상 전무하다시피하다. 간혹 육아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성장 후 아이를 찾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의 통계로는 6 · 25전쟁 이후 지난 1997년까지 국내입양자는 모두 54,639명, 해외입양자는 193,125명에 달했다. 최근 수년간 국내입양은 제자리걸음을 했다. 2001년 1,770명, 2002년 1,694명, 2003년 1,564명 등 정체 상태를 보였다. 2004년 전체 국내 · 해외입양자 3,899명 중 국내입양자 수는 1,641명(42.1%)이었고, 해외입양자 수는 2,258명(57.9%)이었다. 특히 최근 수년 간 국내 입양은 제자리걸음을 했고 경제난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국내입양자 수는 2001년 1,770명, 2002년 1,694명, 2003년 1,564명 등 정체 상태를 보였다.

특히 국내에서의 장애아 입양이 해외입양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아가 국내 가정에 입양된 수는 최근 5년 간(2001년~2005년 6월) 73명에 불과했다. 반면 이 기간에 해외 장애아 입양은 326명이었다. 또 지난해 6월까지 3개월 미만 영아 국내입양이 561명에 달한 반면 3세 이상 아동을 입양한 경우는 41건에 불과했다.

한편 2004년 입양아의 성별을 보면 여자 아이가 1,147명으로 남자 아이(494명)의 배가 넘는다. 과거에는 이러한 남아기피현상에 대해 가문의 혈통을 다른 가문의 남자 아이가 잇게 할 수 없다는 왜곡된 혈통주의의 반영이라고 보았지만 최근에는 여자 아이를 키울 때 육아의 재미도 있고 군 입대의 문제가 있는 남자 아이보다 상대적으로 여자 아이가 경제적인 자립이 빠르다고 판단되어 여자 아이를 선호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국내입양 왜 꺼리나

아직까지 국내에서 입양이 확산되지 못하는 것은 국내 입양 문화로 지적되었다. 혈연을 중시하는 유교적 관습과 마치 ‘저 집은 아이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남의 아이를 데려다 키운다’는 주변의 부정적 인식이 아직도 큰 탓이다.

또한 입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가 국내입양이 주춤하는 데에 한 몫을 하고 있다고 입양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입양 수수료는 국가보조금 유무와 입양 전 양육 형태에 따라 무료부터 수백만원까지 다양하다. 입양 전 아이들은 위탁 가정에 맡겨지는 경우가 많은데 위탁 가정에서 생기는 지출은 기관에서 지불하고 기관은 양부모에게 받는 수수료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또한 기관에서 아이를 맡고 있는 경우도 정부에서 지원받는 비용이 없기 때문에 최소한도내에서 입양 수수료는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한편 저출산 풍조를 더불어 아직까지 정부에서는 고등교육에 한해서 수업료와 입학금 면제, 의료급여 지급 등의 혜택을 주고 있지만 그것 또한 최저금액에 속해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가정에서는 입양에 대해 특히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입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입양을 꺼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입양홍보회 한연희 회장은 “한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려면 뿌리가 잘 내려져서 지속적인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도 제대로 보살핌을 받아야 평생토록 장애와 결핍으로 고통 받지 않는다”며 “가족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보면 마치 나무가 뿌리 채 뽑혀 뿌리가 지상에 있는 듯하다”고 말해 국내입양의 실태를 실감할 수 있었다.

입양자격 및 절차

입양은 법적인 절차를 거쳐 친자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입양을 원한다고 해서 모두 가능한 것은 아니다. 입양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절차와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양부모의 조건은 25세 이상으로 아동과의 연령차가 50세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다. 심신이 건강해야 함은 물론이고 아기가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로서 충분한 경제적, 정서적 지원과 사랑으로 양육할 수 있는 부부이어야 한다.

입양에 합의한 부부는 주민등록등본, 호적등본, 부부건강진단서를 준비해 입양기관에 상담을 신청하면 입양 절차를 밟을 수 있다.

때때로 미혼자가 입양을 원하는 사례가 있기도 하다. 현재는 ‘혼인중의 자’에게만 양친(養親)될 자격을 부여하고 있는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이하 입양촉진법)’상의 규정에 따라 법적으로 제약이 있다. 미혼자는 생활이나 가정에 있어서 불안정하고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변수가 많아 우려되는 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미혼자와 그의 부모가 함께 생활하고 있어 부모가 아이의 주양육을 맡고 미혼자가 경제적인 생활을 함으로써 객관적인 흠이 없다면 특별승인으로 가능하다.

또한 지난해 말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문화관광위원회 · 비례대표)은 기존의 입양촉진법 규정에서 ‘양친(養親)될 자는 혼인여부를 불문한다’라고 하여 원칙적으로 독신가구도 입양을 할 수 있도록 새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박찬숙 의원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보고서(고령화 사회의 사회, 경제적 문제와 정책대응 방안)를 근거로 “2020년이 되면 부부만 사는 가구가 18.9%에 달하고, 1인 가구가 21.5%로 전체 가구의 40.4%를 차지할 것이다”라고 밝히며 “아이 없는 독신가구의 확산과 더불어 오늘날 ‘가족’의 형태는 이혼가족, 편부모가족, 계부모가족, 미혼모가족 등 매우 다양한 형태로 공존하고 있지만 현행 입양촉진법은 유독 양친될 자의 자격에 혼인중일 것이라는 요건을 규정하고 있어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박 의원은 “현행 입양촉진법은 제1조에서 ‘요보호아동의 입양을 촉진하고 양자로 되는 자의 보호와 복지증진을 도모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양능력은 있으나 처음부터 혼인을 하지 않은 독신가구를 입양조건 자체로서 미리 배제시키는 것은 차별이고 편견이다”라고 주장하며 “매년 2,200여명의 아동이 해외로 입양되는 등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벗고 국내 입양의 활성화를 위하여 독신입양이 법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미국은 물론 노르웨이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 등과 같이 원칙적으로 독신가구에게도 아이 키울 권리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제도적 개선 및 지원책, 의식 전환 확대

국내입양 활성화 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씻고 해외입양을 줄이기 위해 경제적 지원과 홍보활동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입양수수료가 국내입양을 주춤하게 하는 데에 한 몫을 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으므로 따라서 정부는 입양아에 대한 교육을 보장하고 의료보호, 장애아동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의 비용 절감 등 조치도 확대해야 한다. 또한 전국적으로 20여 곳에 불과한 입양기관도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

홀트아동복지회 홍보팀 이현주 씨는 “입양을 하고 싶어도 국내에는 입양아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하다. 입양을 결정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정보가 부족해 제대로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것도 문제이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한연희 회장은 “몇 아이들은 시설의 보호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부모의 입양 동의가 없어 입양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많다. 보육시설에는 아이들이 넘쳐나지만 막상 입양을 하려면 실제로는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서 가정에서 이탈되고 가정이 필요한 아이들은 자발적 입양 동의보다 정부가 아이들의 이익을 생각해서 입양 대상 아이로 바꿔져야 한다”며 실제 드러나지 못한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국내입양을 늘리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로 미혼모 등 친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사회적 보장 및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 공개입양 활성화 추진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국내입양의 70% 가량이 비밀입양”이라고 말했다. 비밀입양은 입양자가 실제 ‘배 아파 낳은’ 아이로 꾸며 입양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입양홍보회는 국내 입양가정이 화목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아직도 상당한 파격으로 느껴지는 ‘공개입양’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해 국내 입양에서 새로운 차원을 연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한국입양홍보회 한연희 회장은 “‘공개입양’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출범하자 ‘아이들에게 너무 큰 심리적 피해를 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으나 이제는 입양했음을 주변에 떳떳하게 알리고 입양 당사자에게도 그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것이 입양아의 행복은 물론 입양가정의 화목을 기하는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공개입양에 관해서 “공개입양은 입양 당시 주변에 알리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주변 사람들이 아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입양 후부터 아이에게 입양 사실에 관해 다른 사람과 출발이 다르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알리는 것을 말한다. 입양이라는 용어가 아닌 처음 아이와 만난 순간부터 말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 스스로 ‘내가 엄마와 유전적인 결합이 없었기 때문에 안 닮았구나’라는 것을 알게 해주어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과천시는 ‘반편견 입양교육 가이드북’을 제작하여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입양에 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생명과 가족의 소중함을 배우고 아이들이 입양을 받아들이는 데에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탤런트 차인표 · 신애라 부부가 세간의 관심을 받은 것도 공개입양이라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부모 중심 아닌 자녀 중심의 입양

입양은 아동의 이익이 최우선으로 반영되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를 잇기 위한 입양이 되어 부모 중심의 입양이었다. 이에 대해 한연희 회장은 “우리 사회의 사고가 ‘자녀가 없으니 입양이라도 해 가계 계승을 해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입양은 공동체가 해결해야 할 일이고 사회적인 책임을 가져 국내입양을 확산해야 한다”며 “자녀 없는 가정이 아이를 비밀리에 데려다 몰래 키우고 마치 선심 쓴 것처럼 생각하는 시스템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어떻게 보면 아이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입양은 정직해야 한다. 누구도 입양된 아이의 유전적인 배경이나 뿌리에 대해 숨기고 왜곡시켜서는 안 된다. 공개입양은 정직이 바탕이고 비밀입양은 한 아이의 역사를 왜곡하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입양은 공개적으로 이뤄져 아이를 위한 입양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들의 아이들은 건전하고 자연적인 환경, 즉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고 배우며 행복한 환경 속에서 성장하고 발달해야 한다. 때론 피치 못할 이유로 가정의 붕괴나 해체로 인해 부모와 가정이라는 울타리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 아이들 모두에게 계속해서 가족의 사랑이 이어져야 한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사실이다. 입양이라는 것이 단순히 ‘남의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진심어린 사랑으로 감싸 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중요한 화두로 던져진 입양. 입양은 우리 모두가 해결해야 하는 공동의 문제이다.

-박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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