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숙, 갈 곳 없는 그들의 소리 없는 눈물

민소진

silver56@sisatoday.co.kr | 2006-06-01 21:40:51

http://www.sisatoday.co.kr 거리의노숙인

남편 폭력 피해 가출, 부족한 보호시설

정신질환을 가진 30대 여성 노숙인이 영아를 살해한 사건을 계기로 우리사회의 여성 노숙인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여성노숙인의 경우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갖게 되는 경우가 알려진 것보다 많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가정폭력, 도와줄 가족이 없는 정신장애, 경제적 빈곤이 주요한 요인인 여성노숙인 문제에 대해 일부 단체에서는 “여성 노숙인이 없어서 눈에 안 띄는 게 아니고 그들이 의탁할 만한 서비스가 적어서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며 관심과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여성은 물리적으로 훨씬 약하기 때문에 아주 절박한 상황이 아니면 거리로 나오는 건 가능한 피하므로 숨겨진 여성 노숙인들이 많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거리에서 노숙을 한다는 것은 노숙인을 위한 서비스망으로 접근하기 힘든 조건이 있다는 뜻이다. 이들은 친척이나 친구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거나 이도 마땅치 않으면 가정폭력 및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여성의 쉼터 입소를 택한다.

그러나 여성의 쉼터는 이혼절차를 밟거나 구직을 위한 일시 보호시설인데다 입소절차가 다소 까다로운 편이다. 무엇보다 그 절대수가 수요에 비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따라서 쉼터여성들은 일정기간 이후 또 다시 생활공간이 불안한 상태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노숙인 여성을 위한 쉼터에는 ‘1366’이나 여성의 쉼터를 거쳐 입소한 가정폭력 피해자 여성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반면 쉼터 정보를 접하지 못했거나 쉼터 규율을 꺼리는 노숙인 여성들은 ‘난장치기’(일명 거리노숙)보다는 찜질방, 만화방, 고시원, 쪽방 등 임시 거주공간이나 숙식을 제공하는 식당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서울 여성노숙인 집계에도 잡히지 않아 그 수를 추정할 수 없어 철저하게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 여성들인 것이다. 이들은 어떠한 사회적 지원도 없이 수입의 60~70%에 육박하는 숙박비 마련을 위해 하루 종일 육체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결국 이렇게 단계적으로 걸러져 우리가 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노숙인 여성들은 대부분 임노동이 불가능하거나 사회적 관계망이 부재한 중장년층, 정신장애, 지체장애 여성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노숙인 쉼터나 여성보호센터 같은 기존의 부랑인 시설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장애로 인해 공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진 퇴소를 하거나 쉼터에서 이들을 감당하지 못해 강제퇴거를 시키는 경우가 많다. 노숙인 단체에서는 저녁마다 현장상담(아웃리치)을 통해 여성노숙인을 쉼터로 인도하고 있지만 이처럼 특수한 욕구를 자기고 있는 거리의 여성을 위한 프로그램이 부족해 중장기적인 보호는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노숙인 세계, 남성노숙인과 달라

여성노숙인의 세계는 남성노숙인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 있다. 여성들은 노숙에 이르기 전에 비공식적으로 노동시장에 빠르게 흡수되어 버리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가사 노동력과 육체는 어떤 방식으로든 소용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들이 2차 노동시장에서 감수해야하는 노동력 착취와 심적 고통이 상당히 심각하다는 것에 있다. 하지만 거리의 노숙인 들처럼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목소리는 사회 뒤편으로 묻혀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때 성매매(일면 꽃꼬지)를 하는 거리의 여성들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적이 있다. 물론 거리에서 성매매를 하는 여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성노숙인들 중 극히 일부가 노상생활을 하고 있으며 다시 이들 중 극소수만이 생계를 위한 성매매를 하는 것으로 들어났다.

일부 단체에서는 “여성노숙인 100중 성매매를 하는 1명의 여성이 다른 99명의 여성노숙인들보다 더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어서 관심을 받는게 아니다. 단지 가출 → 노숙 → 성매매에 이르는 과정이 자극적인 가십거리가 되기 때문”이라며 그런 관심은 당사자에게나 전체 여성노숙인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여성노숙인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실업’과 ‘노숙’이라는 남성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이들 여성이 겪는 고통은 대부분 가정폭력과 빈곤, 그리고 불안정한 노동 문제와 맞닿아 있다.

여성노숙인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거리가 아니라 가정폭력쉼터, 노숙인 여성쉼터나 먹고 자는 식당, 숙식이 가능한 다방과 술집, 공장의 기숙사 그리고 이들이 파출부나 베이비시터로 고용돼 있는 가정집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막상 여성노숙자들은 이런 제도적 문제와 더불어 주변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더욱 큰 상처를 입는다. 여성노숙인의 양상은 매우 복합적이어서 여성 혼자냐, 자녀가 있느냐에 따라 사정이 다르며 정신병력 유무에 따라서도 다르다.

정신질환이 있는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과 치료이지만 아이를 키우는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자녀 양육비이다. 소수이지만 이들 사이에 나타나는 스펙트럼은 남성노숙인들보다도 넓다. 그러므로 더 많은 세상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쉼터의 전문화, ‘자활의 집’ 확충 등 해결방안 모색

우선 자녀를 동반한 경우와 단신인 경우로 구분하고 자녀를 동반했을 때 가족단위로 방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한다. 또 정신병력이나 장애가 있는 여성과 정상적인 여성으로 나눠 각기 필요로 하는 별도의 프로그램을 시행해야 하는데 전자의 경우 심리ㆍ건강ㆍ정신상담 서비스를, 후자의 경우 자활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아울러 자녀를 위한 전문 프로그램도 개발해야 하는데 우선 영유아의 경우 응급보호 및 탁아, 의료서비스가 필요하고 5~7게인 경우 쉼터 내 별도의 탁아프로그램이나 양육교사가 지원돼야 한다.

취학아동인 경우 ‘쉼터아이’라는 이유로 집단 따돌림을 당할 수 있으니 이들에 대한 적절한 주간 보호와 심리치료프로그램이 이뤄져야한다. 중고등학생은 정규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경제적, 제도적 지원책이 선행되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어린 시절 겪었던 상실감과 상처를 치유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거리상담을 강화하여 극단에 처해있는 여성노숙인들의 특징과 대응법 등을 숙지하도록 교육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여성노숙인들에게 독립된 주거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집 없이 떠도는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자활의 집’은 자활 능력이 있는 노숙인 쉼터 이용자에게 국가가 3000만원의 전세금을 지원해 집을 구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 1999년부터 시행됐다.

각 쉼터에서 자활의지가 강한 사람을 선정해 추천하면 이를 해당 자치구가 심사해 입주자를 선정한다. 자활의 집 입주기간은 기본 2년에, 1년씩 2회 연장이 가능하다. 실제로 입주하는 노숙인 가운데 모자가정이 상당수를 차지하며 이 경우 다른 노숙인들에 비해 자활의지 및 능력이 강하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여성노숙인들이 혜택을 받 것은 아니다. 8가정이 신청하면 3가정은 탈락하는 꼴로 조사되고 있기 때문에 자활의 집을 확충해 더 많은 여성노숙인들이 자활의 집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2~4년 후 이들이 자활의 집을 나왔을 때 공공임대주택 입주 우선권을 주는 등 주거문제의 안정적 해결을 위한 지원도 병행되어야 한다.

노숙인여성쉼터는 여타 여성쉼터에 비래 경제적 후원이나 자원활동인력도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성노숙인 문제에 있어서 시급한 과제는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실존하고 있는 쉼터와 거리 여성노숙인들의 다양한 생활실태를 면밀히 조사하고 자각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계층 여성에 대한 다각적인 이해와 고민, 나아가 여성운동 진영의 적극적인 연대가 필요하다.

-민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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