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희, ATP 투어 단식 본선 승리 "청각장애 선수 위한 新 지평 열었다"

박미라

| 2019-08-20 18:13:46

ATP 투어 단식 본선서 청각장애 선수가 승리 거둔 것은 이덕희가 최초 이덕희의 경기 모습

시사투데이 박미라 기자] "청각장애가 있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좌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청각장애 3급인 이덕희(21·서울시청·212위)가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단식 본선에서 생애 첫 승리를 따낸 직후 밝힌 소감이다.

ATP 투어 단식 본선에서 청각장애 선수가 승리를 거둔 것은 이덕희가 최초다.

이덕희는 20일(한국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윈스턴 세일럼에서 열린 ATP 투어 윈스턴 세일럼 오픈 단식 본선 1회전에서 헨리 라크소넨(27·스위스·120위)을 2-0(7-6<7-4> 6-1)으로 꺾었다.

2회전 진출에 성공한 이덕희는 이번 대회에 3번 시드를 받고 출전한 후베르트 후르카치(22·폴란드·41위)와 맞붙는다.

이덕희는 청각장애를 딛고 한국 테니스 기대주로 활약해왔다. 2014년 7월 국제테니스연맹(ITF) 퓨처스 대회에서 16세1개월의 나이로 단식 우승을 차지해 정현(23·한국체대·151위)이 2013년 6월 세운 국내 최연소 퓨처스 대회 우승 기록(17세1개월)을 갈아치웠다.

또 2016년 7월 18세2개월의 나이로 세계랭킹 200위 이내에 진입해 정현이 갖고 있던 국내 최연소 200위 이내 진입 기록(18세4개월)도 다시 썼다.

2017년 4월 세계랭킹 130위까지 오른 이덕희는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청각장애를 안고 있으면서도 투어 대회와 메이저대회에 도전해 화제를 모으자 노박 조코비치(32·세르비아·1위), 라파엘 나달(33·스페인·2위) 등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메이저대회에서 이덕희를 훈련 파트너로 초청해 응원하기도 했다.

이날 이덕희의 승리 소식 또한 단연 화제를 모았다.

ATP 투어 공식 홈페이지는 이덕희가 청각장애 선수 사상 최초로 투어 대회 단식 본선 승리를 거둔 소식을 메인 화면 첫 번째에 게재하면서 "이덕희가 청각장애 선수들을 위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소개했다.

ATP 투어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덕희는 "일부 사람들은 나의 장애를 놀리기도 했고, 경기를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며 "힘들었지만, 나의 친구들과 가족들의 도움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모두에게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덕희는 "심판이 점수를 부르는 것을 들을 수 없는 것이 힘들다. 종종 이것이 문제가 됐고, 점수를 잊어버리기도 한다"면서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경기에 집중하면서 최선을 다하려한다"고 답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윈스턴 세일럼 오픈 트위터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이덕희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누가 큰 소리를 지르는 것이나 경적 정도는 들을 수 있다"며 "코트에서 공이나 사람들이 내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더욱 공의 움직임이나 상대의 몸동작에 집중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날 승리에 대해서는 "오늘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포기하지 않고 경기한 것이 승리로 이어졌다. ATP 투어 본선에서 첫 승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2회전에서 이덕희는 이번 대회에 3번 시드를 받고 출전한 후베르트 후르카치(22·폴란드·41위)와 맞붙는다.

이덕희는 "이곳에서 스파게티를 먹었는데 무척 맛있었다. 미국은 정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고, 나에게 잘 맞는다. 즐겁게 지내고 있다"며 "3번 시드와 경기를 하게 돼 긴장된다. 쉽지 않겠지만, 같은 자세로 즐기면서 하겠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ATP 홈페이지는 이덕희의 기념비적인 승리에 동료들도 찬사를 보냈다고 소개했다.

이번 대회에 나선 테니스 샌드그렌(28·미국·73위)은 "몇 년 전 이덕희를 상대로 승리한 적이 있었다. 당시 경기 후 이덕희가 구글 번역기를 통해 '나의 약점이 무엇이냐'고 묻더라. 정말 멋졌다"며 "상대가 공을 치는 소리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것이 많다. 그것을 듣지 못한다면 엄청난 기술과 재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 세계랭킹 1위 앤디 머레이(32·영국·329위)도 "만약 헤드폰을 쓰고 경기를 한다면 공의 스피드나 스핀을 파악하기 무척 어려울 것이다. 귀를 통해 그런 것을 알아챈다"며 "듣지 못하는 것은 굉장히 불리하다. 이덕희가 하고 있는 일을 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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