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중심 의술에 선한 영향력까지…‘탈북 의사’의 큰 울림
이윤지
| 2024-02-29 08:36:37
[시사투데이 이윤지 기자] 탈북 의료인이 한국에서 동종면허를 취득하려면 학위 인정과 별개로 국가고시(국시)를 다시 치러야한다. 그러나 합격의 과정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연령과 경제적 사유 등으로 몇 년씩 국시(필기&실기)를 준비하기 어렵고, 의료체계 및 의학용어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고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한 새터민(북한이탈주민) 의사가 ‘지역민들의 건강 지킴이’로 거듭나며 수백만 원의 장학금도 꾸준히 기탁해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충북 제천시에서 ‘스마트혜인의원’을 운영하는 손혜인 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북한에서 의사로 활동한 손 원장은 12년 전, 40대 후반에 한국 땅을 밟았다. 순전히 새로운 세상과 의학적 성취에 대한 갈증으로 한국행을 택했다고 한다. 이후 하나원에서 적응교육을 마치고, 한적하면서도 서울과 가까운 제천에 정착하며 ‘제2의 고향’으로 삼았다.
그리고 처음에는 대원대학교 간호학과에 입학해 간호사가 되고자 했다. 하나원의 퇴소 시 진로상담사가 “대한민국에서 의사는 상위 1% 엘리트들의 직업”이라며 “50을 앞둔 나이에 의사 자격 취득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해서다.
이에 그는 의사의 꿈을 접어둔 채 간호학 공부를 시작했다. 버스를 타고 오가며 20대의 학생들 사이에서 악착같이 배우고 익혔다. 그러던 어느 날 간호학 공부를 시작한지 한 달이 됐을 무렵 과로로 병원에 입원하며,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쓸쓸한 시기를 보냈다. 무엇보다 입원기간 내내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는 상황 속에서 극심한 고립감과 외로움에 시달렸다.
그때 한 잡지에서 ‘탈북 의사의 역경과 극복 이야기’를 접한 그는 “순간적으로 온몸에 전율을 느꼈고, ‘목숨을 건 한국행의 이유’도 다시금 깨달았다”며 “이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한다. 결국 손혜인 원장은 병원에서 퇴원한 다음날 바로 간호대학에 자퇴서류를 제출하고 ‘의사 국시’를 준비하며, 주경야독으로 1년 반 만에 합격했다. 그동안 제천에서 남편을 만나 가정도 꾸렸다.
이런 손 원장은 2년간 한 병원에서 봉직의사로 근무하고, 2017년에 ‘스마트혜인의원’을 개원했다. 당시 그는 52세의 나이에도 ‘신생아’와 비견될 정도로 한국사회의 모든 것이 낯선데다 학연·지연 등 인맥도 없었다.
손혜인 원장은 “개원 이후 약 3개월간 약국도 입점하지 않았고, 직원 한 명이 200여 미터나 떨어져있는 약국에 가서 처방약을 받아와 환자들에게 전달했다”며 “첫 2~3개월은 직원들의 월급도 대출금으로 지급할 만큼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손 원장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며 ‘한 발씩 더’ 내딛고 분발했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그가 찾아간 곳도, 통증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학회·세미나가 열리는 장소였다. 거의 한 주도 빠짐없이 주말마다 서울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어디든 달려갔다. 지금도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담당하는 의료인’으로서 투철한 소명의식을 갖고, 현대 의학기술과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관련 학회를 찾아다니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특히 “컴퓨터 화면이 아니라 환자들의 눈을 마주보고 진료함”은 손혜인 원장이 병원을 개원할 때부터 고수한 철칙이다. 또한 ‘20대 건강과 미를 100세까지~’라는 슬로건으로 ▲내과(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 ▲통증클리닉 ▲비만클리닉 ▲피부클리닉 ▲수액테라피 ▲금연클리닉 등 분야의 ‘환자 맞춤형 의료서비스 제공’에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즉, ‘진정성을 갖고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최선을 다하는 의료서비스’가 스마트혜인의원의 지향점이다. 현재 직원은 5명이고, 최근에 ‘개원 7주년’을 맞이했다.
나아가 손 원장은 2020년 200만원, 지난해 300만원, 올해 300만원을 ‘제천시인재육성재단’에 기탁하며 ‘선한 영향력’을 일으키고 있다. 세명대학교 민송CEO과정을 수강하면서 제천시육성재단 지중현 이사장을 알게 됐고, 장학금 후원에 관심을 가졌다.
손혜인 원장은 “북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19세가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가슴에 묻었다고 생각하다가도 불현듯 떠오른다”며 “그 또래의 아이들이 꿈을 이루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기부활동을 앞으로도 꾸준히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며 “청소년부터 어르신까지, 제천 지역민들의 건강관리에 일익을 담당할 것”이란 다짐도 잊지 않았다.
한편, 스마트혜인의원 손혜인 원장은 환자중심 의료서비스 제공과 맞춤형 건강관리체계 구축에 헌신하고, 북한이탈주민의 한국사회 정착 및 성공적 자립 모델을 제시하면서, 제천시 인재육성과 기부문화 확산 선도에 기여한 공로로 ‘2024 대한민국 미래를 여는 인물 대상(시사투데이 주최·주관)’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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