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투데이 이윤지 기자] 한 마디로 딱 ‘예술가’다. 자신을 잘 보이려고 포장하지도, 예술가로서의 명예나 성취를 위해 애쓰지도 않는다. 일생을 소신껏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러길 원한다. “왜?”라고 묻자 “돈과 명예도 좋지만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사는 것이 진짜 성공한 인생 아니겠느냐”며 환하게 웃는다.
이는 전남 담양 지실마을에 새로운 문화예술의 싹을 틔운 지곡당(지실문화예술아카데미) 박순애 대표의 이야기다.
어릴 적부터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던 박 대표는 광주수피아여자중학교에 음악교사로 부임하며 지난 2022년 퇴임할 때까지 40년 가까이 후진 양성에 정성을 쏟았다. 정도로 가르친 제자들이 곧 문화예술 발전의 밑거름이 되리란 신념이었다.
그녀는 교단에 서면서도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고 광주교육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순천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마치며 학구열을 불태웠다. 동시에 다양한 문화예술 장르를 섭렵했는데 2005년 ‘제6회 장보고 국악대전’에서 무용부문 이매방류 살풀이로 대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탄광촌의 화가’, ‘광부 화가’로 널리 알려진 거장 고(故)황재형 화백에게 그림을 배우며 미술교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박 대표는 “고단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예술로 깊은 공감과 치유의 메시지를 건넨 황 화백을 통해 ‘예술의 정의’를 다시 내리게 됐다”며 “예술은 먼 곳이 아닌 생활 속에 자리 잡아야 하고, 굳건하게 땅을 밟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늘 마음에 새긴다”고 전했다.
음악인으로서 그녀의 행보는 독보적이다. 우연히 접한 요들에 매료되어 클럽 활동을 이어가던 중 2010년 ‘광주알핀로제요들클럽’을 직접 창단하고, 각종 공연과 봉사활동을 펼치며 특히 청소년 요들 보급에 앞장서 왔다. 회원들과 십수 년간 공연으로 모은 모금액을 심장병 어린이 재단에 기부하는가 하면, 2018년 광주 남구 평화의 소녀상 건립 당시에는 자작곡 ‘이젠 집으로 가자’를 헌정하며 지역 사회에 큰 울림을 남겼다.
박 대표와 담양 지실마을의 인연은 8년 전, 예기치 못한 삶의 변곡점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당시 개인적인 사정으로 갑작스럽게 거처를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운명처럼 만난 곳이 바로 지실마을의 낡은 한옥이었다.
박순애 대표는 “처음 그 집을 보고 마당에 발을 디뎠을 때 대지가 대공명하듯 땅이 크게 울리는 신비로운 느낌을 받았다”며 “마치 공간이 ‘드디어 이제 네가 왔구나! 오래 기다렸어’라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듯 한 강렬한 울림이었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 박 대표는 온 영혼을 바쳐 집을 가꾸기 시작했다. 차갑고 삭막한 시멘트로 되어 있던 서쪽 담장을 허물고, 돌을 하나씩 손으로 날라 정성스레 돌담을 쌓아 올렸다. 혼자의 힘으로는 결코 쉽지 않은 노동이었지만, 풀 한 포기와 꽃 한 송이까지 그녀의 땀과 정성이 깃들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진짜 도전은 그 이후였다. 박 대표가 이 공간을 허물고 지역민과 예술인들을 위한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새집을 짓겠다고 선언하자, 주변의 모든 이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평생을 치열하게 일해온 만큼 "이제는 편히 살아도 될 나이인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걱정과 만류의 목소리였다.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박 대표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마침내 지난달인 5월 2일, 자연과 예술이 숨 쉬는 공간 ‘지곡당(芝谷堂)’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등산의 아름다운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은 2층 규모(60평 남짓)의 건축물로 한겨레 사옥을 설계한 조건영 건축가의 딸 조정화 건축가가 설계를 맡아 자연과 예술, 현대건축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미학을 구현해냈다.
이날 개관식은 단순한 행사를 넘어 문화계의 거장들이 총출동한 축제의 장이었다. 현대무용의 전설 홍신자 선생, 한국 요들의 대부 김홍철 선생, 쪽 염색의 대가 정관채 선생을 비롯해 전남 방언으로 성경을 번역한 임의진 목사, 양림동의 정신을 그리는 한희원 화백, 퍼포먼스 아티스트 임택준 작가, 송강 정철 선생의 16대 직계 후손 정구선 선생 등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참여해 자리를 빛냈다.
지곡당 내부에는 피아노와 드럼은 물론 명상공(GONG), 티벳탄싱잉볼, 크리스탈싱잉볼, 알폰(스위스전통악기), 전통 장구, 북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아우르는 전 세계의 악기들이 명당을 차지하고 있다.
박 대표는 이곳에서 각종 전시회와 서클댄스, 한국무용, 퍼포먼스, 요들송, 공&싱잉볼 사운드 명상 테라피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현대인의 지친 내면을 치유하고, 외국인들에게는 한국 예술의 깊이를 알리는 '문화 외교의 통로'로 활용하겠다는 포부다.
박순애 대표는 “거창하고 권위적인 문화예술의 전당이기보다, 누구나 찾아와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 지친 이들이 언제든 숨을 고를 수 있는 따뜻한 안식처가 되길 바람”했다.
한편, 지곡당/지실문화예술아카데미 박순애 대표는 음악교사로 후학 양성에 헌신하고, 복합 문화예술 공간 조성 및 교육프로그램 운영을 이끌면서, 담양군 문화예술 저변 확대와 지역민의 문화향유 기회 제공 선도에 기여한 공로로 ‘2026 대한민국 신지식경영 대상(시사투데이 주최·주관)’을 수상했다.
이윤지 기자 journalist-le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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