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은희경씨는 작품을 쓰기 위한 시작은 집을 떠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고 집필공간의 중요성을 말한 바 있다. 리얼리즘과 미니멀리즘의 대가로 알려진 미국의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1938년 5월 25일 - 1988년 8월 2일)는 의자에 앉아 있을 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글을 썼다고 한다.
젊은 시절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쉼 없이 노동을 해야 했던 레이먼드 카버. 그는 의자가 있는 곳이라면 잠깐이라도 글을 썼다고 하니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작가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가들에게 ‘공간’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런 작가들의 간절한 바램인 집필전용 공간이 서울 도심 주택가에 터를 잡았다고 해 찾아가 보았다.
서대문구 연희동 주택가 언덕바지에 넓게 터를 잡은 연희문학창작촌. 현판이 걸린 입구에 문자가 조각된 철제문이 인상적이었다. 문학의 턱을 낮추고 대중과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듯 철제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찬 기운을 실은 바람에 낙엽 태우는 냄새가 코끝에 먼저 와 닿았고, 펜이 그려진 넓은 벽화는 글 쓰는 사람들의 공간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한적한 공간에 조용히 퍼지는 참새 소리와 관리인 아저씨의 비질하는 소리는 서정적인 분위기를 더해줬다.
마침,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시간을 내주신 연희문학창작촌 전문위원 박형준 시인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대학 강의실 정도 규모의 세미나실에서 박형준 시인이 연희문학창작촌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 연희문학창작촌은 어떤 곳인가?
최초의 문학인 전용 집필공간(레시던시)으로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작가들을 위해 마련한 창작공간이다. 원래 시사편찬위원회가 사용하던 곳인데, 이곳이 전용주거지역이라 활용도에 어려움을 겪던 차에 문학 장르에 특화한 집중 창작공간으로 만들어졌다.
▶ 서울시에서 작가들을 위한 집필공간을 만들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인가?
그렇다고 봐야한다. 지방에는 만해마을이나 토지문화관과 같은 곳이 있는데 서울 도심에 작가들을 위한 집필전용공간을 마련해 준 것은 처음이다. 서울시가 컬쳐 노믹스 전략으로 여러 가지 창작공간을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다.
▶ 입주 작가의 자격조건은?
신춘문예나 공신력 있는 문학잡지를 통해 등단한 신인작가나 기성작가 누구나 가능하다. 다만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구체적인 집필 계획 등이 있어야한다.
▶ 연희문학창작촌에 입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작가들을 대상으로 입주 희망 지원 공모를 한다. 지원한 작가들의 경력이나, 문학적 성과, 입주지원 동기의 타당성 같은 것을 전반적으로 검토를 해서 승인을 하게 된다. 7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운영위원들이 입주 작가를 선정하게 된다.
▶ 입주 기간은 어떻게 되나?
1개월, 3개월, 6개월 단위로 입주가 가능하다. 입주하면 자유롭게 머물면서 집필하면 된다. 최대한 많은 작가들이 입주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번 입주 했던 작가가 다시 입주할 수는 없다.
▶ 1기 입주 작가는 어떤 분들이 있나?
신달자 시인외 5명, 소설가 은희경작가 외 9명, 아동문학가 유은실, 김해등작가 그리고 희곡작가 최창근작가 등 모우 19명이 입주해 있다. 원로 문인과 젊은 작가가 두루 입주했다.
▶ 입주 작가들의 만족도는 어떤가?
만족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공간이라는 곳이 어떤 생각을 하게 하는 곳이다. 작가로써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공간을 누리기 위해 무리를 해도 좋은 거 아니겠는가? 글쓰기가 공간하고 밀접한 만큼 작가에게 공간은 정말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연희문학창작촌은 경제적으로 집필실 마련이 어려운 작가들에게 꼭 필요한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서울 도심에 있어서 일상과 단절되지 않고 출퇴근도 가능하니까 효율적으로 집필 활동을 할 수 있는 점이 상당히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전용공간에서 창작을 하다가도 필요한 책이 있으면 언제든지 서점으로 달려 갈 수 있고, 정보를 얻기에도 도심이 편하지 않은가? 그러니 일상생활을 유지하면서 집필에도 전념할 수 있으니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다.
▶ 야외공연장도 마련되어 있던데?
창작촌이 주택가에 있는 만큼 지역주민과의 소통도 염두에 뒀다. 대중들에게 문학의 턱을 낮추고 지역주민이 문화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12월 입주 작가와 주민이 함께하는 <정기낭독회>를 준비 중이다. 그리고 <문학 심포지엄>, <시민문예교실>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 또 지역주민이 견학을 와도 좋고, 문학단체에서 시낭송회를 하고 싶어 야외공연장을 이용하고 싶다고 하면 타당성을 검토해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동화작가도 입주해 있으니 아이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도 만들면 좋을 거 같다.
▶ 해외작가 레지던시는 어떤 목적으로 운영되는가?
세계적인 작가를 기획 초청해서 국내 작가와의 교류를 지원할 예정이다. 외국 작가와 국내 작가의 교류를 계기로 창작과 연구 활동을 통해 국제교류 네트워킹을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앞으로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작품이 집필되고, 세계적인 작품이 나오길 바란다. 아마도 세계적인 작가 배출의 산실이 되지 않을까.
서울시창작공간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된 연희문학창작촌은'남산예술센터’, ‘서교예술실험센터’, ‘금천예술공장’, ‘신당창작아케이드’에 이어 다섯 번째 서울시창작공간이다. 문학인전용 집필공간인 만큼 글쓰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 아닌가 싶다. 소설가 권지예씨는 현재 이곳에서 문화일보에 연재할 소설을 집필 중에 있다고 한다. 소설가 손홍규씨도 장편을 집필 중이라고 하니 이곳에서 세계적인 문학작품이 탄생하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다.
박형준(전문위원) : 시인.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家具의 힘」으로 등단.
시집으로『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빵냄새를 풍기는 거울』,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춤』등이 있다.
장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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