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투데이 박주환 기자]42년전 전남 광주에서 예비군 훈련중 발생한 의문의 사망사건이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이재오, ACRC)의 끈질긴 노력으로 조사 1년만에 진실이 밝혀졌다.
1968년 6월 전남 광주에서 실시된 예비군 훈련을 받던 최모씨(당시 25세) 는 심한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져 군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이틀 후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사망 통지를 받은 최씨 유족이 급히 군 병원을 찾아갔으나, 병원에서는 “급성 복막염으로 사망했지만, 원인은 모르겠다”며 단순 ‘병사’ 처리를 했다. 훈련 부대는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았고, 현장에 같이 있던 예비군들은 각자 고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사망 하루만에 화장을 한 최씨 유족들은 이후 ‘구타로 인한 장 파열’을 의심했지만, 당시는 북한 특수부대원의 청와대 습격사건(1.21사태)이 있던 어수선한 시절이었다. 이후 1974년경에야 국가기관에 정식으로 조사요청을 해봤으나 ‘사회혼란세력’이라는 협박만 들었다고 한다.
이후 최씨의 형과 어머니도 세상을 떴고, 이로 인해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던 중, 2009년 3월 최씨의 동생(63세)은 우연히 기차를 타고 가다가 객차안에 붙은 국민권익위 홍보 포스터를 본 후 권익위에 고충민원을 냈다.
민원을 접수한 국민권익위는 군번이 잘못 기재되어 있던 사망자의 병상일지를 어렵게 찾아내 대한의사협회에 분석을 요청한 결과 ‘복강 내 출혈(장 파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후 최씨의 소속부대 장교와 군의관을 힘들게 찾아냈지만 대부분 사망한 상태였다. 하지만, 당시 부대관계자들과 예비군 참석자 100여명을 일일이 찾아내고, 사망자 주소지인 전남 구례군에 조사관들을 파견해 예비군 훈련대상자들을 포함해 관계자 100여명을 모두 조사해 1년간이나 탐문을 펼쳤다.
이 결과 현장을 직접 본 예비군 교관과 조교 등 2명의 목격자를 어렵사리 찾아냈고, 이들로부터 “최씨가 얼차려중 교관 발에 복부를 맞아 쓰러졌으며, 병원 후송후 사망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지난 3월 목격자들과 함께 당시 사고현장을 방문해 현장검증을 거쳐 이같은 진술이 진실임을 확인하면서 육군참모총장에게 최씨를 순직자로 인정하도록 시정권고를 할 수 있었다. 가해자였던 이모상사는 사건 4년후인 1972년 사망한 상태였다.
권익위의 시정권고를 받은 육군본부는 육군수사단을 통해 적극적인 검증 작업을 실시해 권고 내용을 사실로 확인하고, 육군 전공상심의위원회에서는 이에 따라 사망자를 이번에 순직으로 인정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권익위의 고충민원 처리기한이 90일인 것에 비해 이번 사건처럼 1년이라는 긴 조사기간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서 해결이 어려웠지만 사망자의 억울함과 유족의 아픔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조사를 진행했으며, 여기에 육군본부를 포함한 많은 기관의 노력과 당시 현장 목격자의 희생적인 증언을 확보할 수 있어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사망자의 위패가 현충원에 모셔지게 되었으니 조금이나마 한을 풀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한편 권익위에 민원을 낸 최씨 동생은 사망자의 직계가족이 아니므로 국가유공자 유족으로 등록할 수는 없으나, 국가를 상대로 한 배상청구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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