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투데이 장수진기자]
우리 생활에 핸드폰이 등장하면서 한때 시계시장이 급격하게 위축됐다. 사람들은 시계를 손목에서 풀어 놨고 대신 정확한 시간을 알기 위해 핸드폰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다보니 점차 시계 시장이 위축되고 도산하는 회사들이 늘었다.
그런데 최근 1, 2년 사이 시계 시장에 파란 불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시계를 시간을 재는 도구의 개념이 아닌 액세서리 개념으로 받아 들였다. 또한 자신을 표현하는 패션 아이템으로 여기면서 시계 시장이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사치품 품목에 시계를 추가 시켰다. 유명 연예인이 차고 나오는 시계는 인터넷에서 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리며 화제가 되고 브랜드와 가격대까지 거론됐다. 최근 배우 김남길이 고현정한테 선물로 받았다는 모 브랜드의 시계는 며칠 동안 인터넷 뉴스에 오르내리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런데 아쉬운 건 유명 연예인이나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시계가 하나같이 상상을 초월하는 고가의 수입 명품 브랜드라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국내 시계 시장에 새 바람을 일으키며 나타난 순수 국내 브랜드가 있다. 1인 기업 대표 황진영씨가 지난 3월 28일 공개한 시계 브랜드 ZIG가 그 주인공이다. ZIG는 ‘정책, 방향등의 급격한 변화’라는 뜻으로 국내 시계 시장에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킬 조짐을 보인다. 황진영씨 단독으로 기획부터 디자인, 제작, 제품 출시에 이르기까지 2년에 걸쳐 이뤄낸 성과인 ZIG는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며 주문이 늘어나고 있다.
국내 시계 회사들이 유행에 맞춰 빨리 만들고 빨리 파는 것을 반복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에 도전하지 않는 상황에서 황진영씨의 도전은 국내 시계 시장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것으로 생각된다.
시계에 올인한 남자 황진영씨의 시계에 대한 열정으로 해외 명품 브랜드 시계들과 경쟁을 시작한 황진영씨의 도전기를 들어봤다.
황진영씨가 ZIG라는 시계 브랜드를 기획하게 된 동기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대학 졸업 후 시계 제작 업체에 근무하던 그는 2004년 세계최대규모의 시계보석박람회인 스위스 ‘바젤월드’에 전시자 자격으로 참여하게 됐다.
전시장은 명품 브랜드 전시장과 그 밖의 시계 업체 전시장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전시장의 규모와 화려함이 극명하게 대비됐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에게 충격을 준 것은 다름 아닌 실제 제품 자체가 보여주는 품질의 차이였다. 스위스 시계가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현장에서 직접 보니 놀랍고 위축되고 화도 나고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다 언젠가는 한국에서 제일 좋은, 세계에서 경쟁할 수 있는 시계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우리나라는 시계 만드는 기술력을 갖춘 나라이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만든 시계가 스위스로 수출된다.그럼에도 그들과 경쟁할 수 있는 시계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은 시장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시계하면 스위스의 명품 브랜드를 먼저 떠올린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리 품질이 좋고 잘 만든 시계를 내놓는다 해도 그들과 경쟁한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일 수밖에 없다.
황진영씨는 어떻게 해야 이런 시장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 또 고민했다. 좋은 시계를 만들려면 가격대가 올라가고 가격대를 높이면 같은 가격대의 스위스 제품을 찾을 텐데. 여러 가지로 고민하다 그는 직접 만들어 팔면 되지 않을까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사치품 품목에 해당하는 시계는 유통마진 폭이 큰 품목이다. 적게는 4배에서 브랜드 퀄리티가 있는 것은 8배씩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유통을 확 줄이면 가격을 낮추고 그 비용을 시계에 투자할 수 있지 않을까. 품질은 높이고 가격을 낮출 수 있다면 경쟁력을 가질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2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완성한 시계는 그의 뚜렷한 목표와 집념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수 없이 많은 디자인을 스케치하고 가죽 콜렉션을 구입하기 위해 홍콩에 가서 원단과 컬러를 보고 ZIG 시계와 가장 잘 매칭 될 있는 컬렉션을 주문했다. 시계 부품 제작을 위한 외주업체와의 신경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었다. 소량 주문하면서 까다로운 요구사항을 받아들일 업체가 얼마나 있겠는가. 그는 때로는 업체 사람들의 비유를 맞추고 때론 다각도의 조건을 제시하면서 그들을 설득했다. 그는 자신이 목표한 것을 이루기 위해 견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 시계는 수명이 짧다. 롤렉스의 경우 70년 전과 지금의 디자인이 조금만 바뀌었을 뿐 그 맥락은 그대로 이어져왔다. 긴 시간 판매되고 사랑받아 왔기 때문이 명품이 된 것이고 힘이 생긴 것이다. 이처럼 수 십 년씩 장수 할 수 있는 디자인을 내 놓는 것이 그의 목표이다. 그는 여러 가지 디자인 시안을 추리고 추려서 한 모델을 만들고 다양한 컬렉션으로 변화를 준다. 한 모델이 다양한 컬렉션으로 판매가 된다면 결국에는 한 모델로 집중 되고 수명이 길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제품 하나에 깊은 고민을 담아낸다면 국내 시장은 물론 세계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확신했다.
최근 그는 국내 유명 백화점에서 입점 제의를 받았다. 한때는 백화점에서 자신이 만든 시계를 전시, 판매하는 것이 목표인 때도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떨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백화점이라는 유통 자체가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고 공신력을 갖게 하는 것이니 온라인을 통해 판매하는 현 상황에서 어찌 유혹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과감하게 백화점 입점 제의를 뿌리칠 수 있었던 것은 ZIG라는 브랜드 네임에서 알 수 있듯 유통 과정과 제품에 대한 개념을 바꾸자는 의도가 기존 유통의 상징인 백화점에 입점하게 되면 스스로 거짓말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사람들에게 ZIG라는 시계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제품이 출시되고 시계를 접한 사람들은 상당히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줬다. 젊은 사람이 열심히 만들었다고 인정해주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그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야심찬 계획과 목표는 그를 쉼 없이 고민하고 바쁘게 뛰게 만든다. 이제 시작 단계이고 그가 어려서부터 꿈꿔왔던 최종 목표에 도달하려면 오랜 시간과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지금은 시계 제작과 판매 모든 과정을 혼자 해나가고 있지만 상황이 허락되면 직원을 채용할 생각이다. 또한 로드 숍을 오픈해서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보고 제작자와 상담을 통해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려고 한다. 그 밖에 정기적인 문화행사를 통해 ZIG라는 회사의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소비자가 제품을 소비하면서 회사의 이미지도 함께 공유하는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고 싶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최종적으로는 한 건물에서 제작부터 판매까지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 지하에서는 디자인과 샘플을 만들고, 1층에서는 판매, 2층은 오피스, 3층에는 제품의 부품 품질검사와 조립까지. 모든 것을 ZIG에서 할 수 있는 인 하우스 모델을 만드는 게 최종목표이다.
당장은 스위스처럼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없지만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브랜드가 될 거라고 믿는다. 일본의 전자제품의 아성을 뒤로하고 삼성과 LG전자가 세계에서 인정받는 것처럼 세상에 도전장을 던져 거침없이 자신의 꿈을 펼치는 젊은 청년의 열정은 바로 21C 한국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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