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투데이 장수진기자] 조영남의 '이상 시 해설서' 이야기
가수, 방송인, 화가, 작가. 조영남을 수식하는 타이틀은 네 개나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겨우 하나의 타이틀을 붙잡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에 비하면 다양한 재능을 펼치며 분야마다 꾸준한 활동을 계속하는 조영남은 부러운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라디오 DJ, 가수활동은 물로 미술 전시회도 심심찮게 열고 있으며 글쓰기 작업도 마찬가지로 꾸준히 하고 있다.
대중의 대부분은 조영남이라는 이름에서 먼저 가수라는 타이틀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화투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는 것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 <어느 날 사랑이>, <맞아죽을 각오로 쓴 100년 만의 친일선언> 외 다수의 책을 펴낸 작가란 것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최근 작가 조영남이 문학판에서 욕먹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또 일을 저질렀다. 시인 ‘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쓴 책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한길사)란 제법 묵직한 ‘시 해설서’가 그가 저지른 일의 중심에 있다.
이상의 시는 단어와 기호, 그림이 뒤섞인 시와 뛰어 쓰기를 무시한 시로 문학을 하는 사람도 난해해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그런 이상의 시를 문학평론가도 아니요, 시인도, 문학전공자도 아닌 가수가 해설을 하겠다고 나섰으니 욕먹을 각오를 단단히 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게 분명하다.
조영남은 1980년도에 ‘시인 이상을 위한 지상 최대의 장례식’이란 그림을 그렸을 만큼 이상에 푹 빠져 있었다.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시인 이상을 연구하고 그의 시를 곱씹어 음미하면서 세계를 막론하고 이상이야말로 이 시대 최고의 시인이며 예술가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 그가 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이상 시 해설서’를 집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직접 작가 조영남을 만나 이상 시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 특별히 이상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면?
이상만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보들레르, 랭보, T.S. 엘리엇, 정지용이나 김기림의 시도 읽으면 해석이 가능한데 이상의 시는 금방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면 볼수록 매력이 있다.
#. 문학평론가도 해석하기 힘든 시를 해석했다. 어떻게 가능했나?
평론가는 시를 더 어렵게 해석했다. 난 이상 시에 대한 내 생각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을 뿐이다. 올해로 이상이 태어난 지 꼭 100년이 되는데 이제 내가 이상에 대해 더 늦기 전에 이상에 대해 써 놓고 죽어야겠구나 생각했다. 사람들은 이상을 한 시대를 살다간 기인쯤으로 가볍게 얘기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평론가들이 이상 평전에 그렇게 쓰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것들이 나를 분개하게 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꼭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해석이 가능했던 이유는 아마도 내가 미술을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현대 시는 현대 미술과 비슷하다. 칸딘스키, 피카소 그림을 보면 뭘 표현했는지 금방 알아차릴 수 없다. 마찬가지다. 나는 미술을 이해하니까 이상 시도 잘 알 수 있다.
#. 이상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 같다. 이유가 있나?
아무래도 이상의 DNA와 내 DNA가 같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도 미술을 했고 이상도 미술을 탁월하게 잘 했다. 그 당시 대한민국 미전에 나가 입선했고 일본 학생이 대부분이었던 경성공고(현재, 서울대학교)에 다녔다. 시와 건축이라는 건축 잡지 표지 공모에 1등과 3등을 했을 만큼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다. 삽화도 그렸고...
우리 집안도 대대로 건축을 했다. 아버지가 목수였고 큰 아버님이 대목장, 사촌이 도시 건축가였다. 나도 가수 하지 않았으면 아마 가구점을 하지 않았을까. 이 테이블이랑 협탁도 내가 직접 만들었다. (조영남씨 자택 거실에 놓인 가구)
#. 책 내용이 재미있고 쉽게 읽힌다. 이상 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쉽게 쓴다고 썼는데 더 쉽게 썼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20대 후반부터 끊임없이 고민했다. 이상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어떻게 이상을 부활시킬까, 이상을 시의 제왕으로 알려야 하는데...나는 자신 있다. 보들레르나 랭보, T.S. 엘리엇보다도 뛰어나다. 다른 평론가들은 외국시하고 비교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다. 또 이상의 시가 일본 현대시의 아류가 아닌가 생각하기도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이상이야말로 이 시대 최후의 천재였다고 나는 믿는다. 이상은 괴상망측한 현대시를 썼다. 그건 위대한 것이다. 칸딘스키나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뭘 표현했는지 잘 모르지 않나. 마찬가지다. 나는 미술을 이해하니까 이상 시도 잘 이해할 수 있다.
#. 책이 출판되고 문학계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나?
아직은 반응이 없다. 그런데 재판이 나왔다고 하더라. 욕먹을 각오를 하고 쓴 것인데...현재 강의 섭외가 많이 들어와 있다. 교보문고, 출판단지에서도 강의를 해야 한다.
#. 미술 얘기가 나왔으니까 묻고 싶은 게 있다. 화투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있나?
일단 그림은 사람의 시선을 끌 수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 그림 공부하느라고 미술관을 돌아다니는데 보니 시선을 끄는 그림도 있고 그렇지 못한 그림도 있더라. 재미없는 전시장에서는 관람객들이 그냥 쓱 지나간다. 재미가 없으면 누가 내 그림을 보러 오겠는가? 내 그림을 보고 흥미를 느끼게 해야는데 고민하다보니 강이나 바다, 집 이런 풍경들은 수많은 화가들이 그려왔고... 그런데 화투는 아무도 그리지 않았더라.
나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이 창작이라고 생각한다. ART는 남들이 안했던 걸 하는 것이다. 화투를 보고 바로 저거다 싶었다. 왜냐면 화투라는 게 역사성도 있고, 일본에서 들어왔는데도 얼마나 좋아하는가. 죽은 사람 앞에서도 3일 밤낮을 치는 게 화투다. 화투 속 에 역사성, 조상들의 삶이 담겨져 있는 것을 소재로 한 것이다.
#. 가수, 작가, 화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데 어떻게 가능한가?
나는 재미있는 것을 추구한다. 재미있으면 하고야 만다. 그림을 그릴 때는 그리는 것이 좋고 글을 쓸 때는 글 쓰는 것이 재미있다. 재미있는 것을 열심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
#. 재미있다고 다 할 수 없지 않나?
글쎄... 내가 갖고 있는 DNA가 그런가... 원래 궁금하면 못 참고 재미있으면 그냥 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아침 신문에 클린턴이 자신의 버킷 리스트에 킬리만자로 정상에 있는 눈을 밟고 싶다고 했더라. 나도 생각해 봤는데 내 버킷 리스트는 없더라. 하고 싶었던 것은 다 했기 때문인 것 같다. 다만 마지막으로 멋진 사랑이나 한 번 해봤으면...
조영남은 자신이 하고 싶은 건 다 해봤기에 더 이상 하고 싶은 일이 없다고 한다. 계산하지 않고 앞서 고민하지 않기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과감하게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것이 지금의 조영남이란 캐릭터를 만들어낸 힘이고 아직도 꺼지지 않는 열정을 갖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저작권자ⓒ 시사투데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