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투데이 장수진기자]
거문고 연주가 허윤정. 최근에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활발하게 공연활동을 펼치며 한국의 소리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녀는 거문고 연주가로 유명하지만 직접 작곡도 하고 공연기획부터 연출에 이르기까지 공연과 관련된 많은 일을 도맡아 하며 연출가로써의 자질도 맘껏 발휘하고 있다.
또한 전통음악전용극장인 북촌창우극장 대표로 재능 있는 젊은 국악인의 발굴과 그들이 공연할 수 있는 터를 마련해주고 연주가와 관객이 밀착된 공간에서 음악으로 서로 소통하고 느낄 수 있는 장을 만들어줌으로써 우리나라 전통음악의 발전은 물론 전통예술문화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그녀가 처음 거문고를 만난 건 국악고등학교에 입학한 후였다. 예원학교에서 한국무용을 했던 그녀는 무용가를 꿈꿨었다. 그러나 체력에 한계를 느껴 어쩔 수 없이 무용에 대한 꿈은 접어야 했다. 그즈음 국립극장 극장장을 맡으셨던 부친 故 허규선생의 권유로 국립국악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한국무용을 했던 그녀에게 전통음악이 익숙하긴 했지만 악기를 직접 연주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었다. 당시 이미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란 것을 선견한 부친은 “악기는 더 한국적이고 한국에서 최고가 되면 세계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다”고 조언하셨고 그녀는 선뜻 국악고에 지원한 것이었다. 그렇게 국악고에 진학해 처음 거문고를 만졌다.
허윤정은 거문고가 전통음악의 본질을 가장 잘 갖고 있으며 어떤 국악기보다 한국적이고 개성이 강한 악기라고 평했다. 가야금 소리가 서양악기 바이올린과 닮아 있다면 거문고 소리는 첼로 소리와 비슷한 음색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거문고를 처음 대하는 순간 거문고의 깊은 음색에 매력을 느꼈다. 예부터 학문을 닦는 선비들도 거문고 소리가 깊고 장중해 악기 중 으뜸으로 여겼다고 한다.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 한 허윤정은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부수석을 지냈고 국내 실내악단 슬기둥 멤버로 활동했으며 이후 솔리스트 앙상블 ‘상상’으로 활발하게 연주활동을 이어갔다. 수많은 공연을 통해 거문고 솔리스트로 이름이 알려지고 그녀는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다. 2007-2008 미국 록펠러재단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아티스트로 선발돼 뉴욕으로 향했고 뉴욕에서의 6개월은 그녀의 국악인생에 전환점이 된다.
6개월을 뉴욕에서 머물면서 하루를 48시간처럼 살았다는 그녀는 커다란 거문고를 메고 다니면서 수많은 음악회를 찾아다녔고 여러 아티스트를 만났다. 또 그곳에서 활동하는 좋은 연주자들을 만나 음악에 대해 토론하고 생각을 나누면서 국내에서 그녀가 했던 활동들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그들과 함께 음악도 만들고 자신감을 얻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과 함께 공연을 기획하고 연주회도 갖는데 그렇게 작은 무대에서의 공연을 시작으로 지금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하며 우리 전통음악의 위상을 떨치고 있다.
허윤정은 뉴욕에서 만난 아티스트들과 다국적 퓨전국악그룹 ‘Tori Ensemble’이란 팀을 만들고 리더로 활동하며 음악감독도 맡고 있다. 그녀는 거문고가 재즈와 만났을 때 어떤 장르보다 잘 어울린다는 것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재즈 자체도 폭이 넓고 즉흥성이라든지 리듬을 활용하고 추구하는 것이 거문고와 잘 맞아 떨어졌다. 그래서 함께 활동하는 아티스트들도 재즈뮤지션들로 구성됐다. 이들 ‘Tori Ensemble'은 각각 다른 문화와 음악적 색깔을 지닌 아티스트의 즉흥 연주로 솔로와 앙상블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음악과 음악 간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형태의 수준 높은 음악을 들려준다.
허윤정은 뉴욕에서 활동하며 형성해 놓은 네트워크와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에 진출하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통로가 되고 브릿지 역할을 기꺼이 담당할 것이라고 했다.
허윤정의 음악적 실험과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아티스트로써 창작에 대한 욕구는 새로운 것을 요구했다. 거문고의 자연 그대로의 소리와 어울릴 수 있는 소리를 찾다가 최첨단 기계음이 내는 소리가 만나면 어떤 효과를 낼까를 고민했다. 거문고 소리를 그대로 가져가면서 브릿지 역할을 할 수 있는 소리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거문고는 최첨단, 멀티미디어, 일렉트로닉하고 만났을 때 소리가 더 잘 살아났다. 인공적이고 기계적인 사운드는 거문고의 자연적인 소리를 돋보이게 하며 절묘한 조화를 만들어 냈다. 그렇게 ‘거문고 일렉트로니카’란 공연을 통해 실험성이 돋보이는 음악을 대중들에게 선보이고 시대를 관통하는 음악이라는 평을 받으며 우리 전통악기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6호 한갑득류 거문고산조 이수자이기도 한 그녀는 연주뿐만 아니라 작곡도 직접 한다. 전통음악 작곡가로써 그녀는 전통적인 작곡방식이 살아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양음악과 달리 전통음악은 악기를 잘 알고 다룰 수 있어야 진정한 우리의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또 그녀의 부친 故 허규선생이 한국적 창작극과 전통예술공연의 산실을 꿈꾸며 소극장으로 출발했던 북촌창우극장이 많은 우여곡절 끝에 그녀의 노력으로 2006년 가을, 전통음악전용극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그곳을 부친의 정신을 이어받아 젊은 국악인들이 연주하고 싶은 장소 또 외국 뮤지션들이 실질적으로 한국을 경험하고 음악작업도 같이 할 수 있는 국제교류의 장으로 만드는데 힘쓰고 있다.
국악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그녀의 지칠 줄 모르는 발걸음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중견 거문고 연주가로 그동안 수많은 국내외 공연을 통해 이름을 알렸고 인정받았지만 그것으론 부족하다. 마당극과 창극, 축제의 개척자로 불리는 연극연출가였던 부친 故 허규 선생이 그랬듯이 그녀는 우리전통음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젊은 국악인들에게 활동 영역을 넓혀주고자 선배 국악인으로써 열심히 길을 닦아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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