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한국영화 박스 오피스 1위를 석권하고 누적 관객 수 6백228천을 넘어서며 최고의 흥행 성적과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의 영예까지 얻은 영화 ‘아저씨’에는 특별한 악당이 존재한다. 배우 원빈이 아저씨라는 어감에서 풍기는 이미지를 새롭게 바꿔놨다면 영화 아저씨의 악당 ‘만석’역의 김희원은 악당의 캐릭터를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내며 자신의 이름을 대중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대학로 연극판에서 10여년간 연극무대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며 살아 있는 연기를 펼쳐 온 배우 김희원은 이제 연기의 영역을 넓혀 영화판에서 자신의 이름을 확고히 하고 있다. 그의 연기에 대한 신념과 영화배우가 되기까지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화 아저씨의 만석 story...
아저씨의 이정범 감독은 영화<거북이 달린다>에서 특공무술관 관장 역을 맡았던 김희원을 보고 악당 만석 역에 캐스팅했다. 이 감독은 코믹하면서도 능글능글하게 관장 역을 소화해 낸 김희원을 보고 저런 얼굴로 악역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감독의 예상은 적중했다. 김희원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평범한 얼굴로 조직폭력배 보스 만석을 섬뜩한 악당으로 그려내며 극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는 만석을 연기하며 “이왕이면 더 나쁘게 그려내고 싶었다. 단순히 인상을 더 쓴다거나 싸움을 더 잘 한다거나가 아니고 그 악당이 바로 내 옆집에 사는 사람이라고 설정하고 관객들이 보면서 옆집에 사는 사람이 저렇게 나쁜 놈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면 했다”며 인간적인 부분을 살리려고 동생에 대한 애정을 집어 넣었다고 한다. 악당이지만 가족을 염려하고 위하는 건 평범한 사람들과 똑같은 그런 인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면서 조직폭력배를 비즈니스로 생각하며 사업적인 마인드를 가진 악당이 만석이란 인물이다.
그는 캐스팅이 되고 만석이란 인물을 그려내기 위해 연구하고 감독과 의견을 충분히 나누며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악당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잔인하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악랄하지만 자신의 동생은 끔찍이 생각하는 인물 만석은 배우 김희원으로 인해 평면적인 악당의 캐릭터에서 입체적인 인물로 되살아난 것이다.
연극무대에서 한 판 신나게 놀다.
김희원이 연극판에 뛰어들게 된 건 연극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연극이 뭔지도 모르면서 단순히 직장을 구한다는 생각으로 극단에 들어갔다. 연극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배고픈 직업인 줄도 몰랐고 처음 연극 무대에 오르던 날엔 남자 배우가 분장한다는 것을 생각조차 못했기에 분장도 하지 않고 있다가 선배에게 호되게 혼났을 정도로 연극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그런 그가 연극무대에서 10여 년간 무대에 올라 연기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그는 연극무대에 서는 걸 “한판 신나게 논다”라고 표현한다. 디테일한 연기를 선호하는 그는 연기를 할 때는 ‘그런 척’을 하는 연기가 아닌 진정으로 ‘그런’ 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울거나 화를 내거나 어떤 상황을 연기하든 흉내 내는 것이 아닌 정말 그런 상황 속에 빠져 연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역에 푹 빠져 연기를 하고 나면 왠지 신나게 한 판 놀고 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그에게 연기를 계속하게 하는 힘이 아니었을까.
그를 떠민 배고픈 현실...
그는 뒤늦게 대학에서 연기를 공부했다. 어느 순간 대학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에 서울예술대학에 입학해 공부를 했고 또 어느 순간 연기 생활을 접고 홀연히 호주로 떠났다. 연극에 빠져 살다보니 나이는 먹고 돈은 없고 배고픈 생활에 부모님 뵐 면목도 서지 않았다. 그는 호주에서 페인트공으로 돈을 벌며 어학 공부를 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높은 건물 벽에 매달려 하루 종일 페인트를 칠하는 일이었다. 매일 벽만 쳐다보고 페인트만 칠하다보니 문득 ‘내가 이러려고 태어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년 8개월 정도를 그렇게 지내다보니 연기에 대한 생각이 다시 그를 붙잡았다. 귀국 후 그가 선 무대는 배우 김윤석과 함께 한 지하철1호선이었다.
연극무대에서 영화로...
디테일한 연기를 좋아하는 그가 설 무대가 점점 사라졌다. 뮤지컬도 수입 된 대형 뮤지컬이 대부분이고 연극을 해서 먹고 산다는 것에 회의를 느꼈다. 그즈음 그는 영화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그를 캐스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다보니 우울증도 생기고 사람 만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찾은 게 산이었다. 등산을 하며 명상을 하고 그 시간을 인내하는 법을 배웠다. 그때 배우 임창정 소개로 영화 1번가의 기적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배우의 길로 접어든다. 그 후 두편의 영화에 더 출연하고 1년6개월을 또 쉬게 되었는데 그때는 조급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미 오랜 시간 힘든 경험을 하며 온 길이기에 포기하지 않는 법을 알았고 다 잘 될거라는 생각도 놓지 않았다.
그는 첫 영화 1번가의 기적을 할 때는 연극판에서처럼 맘껏 놀지 못했다고 한다. 카메라가 낯설었고 편하게 연기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카메라와 촬영현장이 편해졌다. 자신이 촬영이 있는 날 이틀 전에 이미 현장에 가서 분위기를 익히고 현장에 적응한다. 그렇게 하다 보니 촬영에 들어가면 편하게 연기를 할 수 있다. 또 촬영이 끝나면 현장에 남아 스텝들과 시간을 갖는다. 그의 연기를 맨 처음 보는 관객이 스텝과 감독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들의 반응을 보고 자신의 연기를 점검한다.
김희원이 하면 스페셜하다!
배우 김희원. 그는 영화<거북이 달린다> 에서도 관장역을 코믹하면서도 알송달송한 캐릭터로 만든 장본인이다. 특공무술관 관장으로 조필성(김윤석)형사에게 특공무술을 가르쳐 주는데 실제무술을 잘 하는지 어떤지 알 수 없는 캐릭터로 비친다. 작품의 톤이 관장이 특공무술을 잘 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 애매하게 끌고 갔다고 한다. 싸움 실력이 대단한 탈옥수 송기태(정경호)와 싸우는 씬도 그래서 감독과 의논해 안 찍었다고 하니 캐릭터를 연구하고 살려나가는 힘과 적극성이 대단한 배우다.
그는 관객의 허를 찌르는 법을 알고 있는 배우다. 역을 맡으면 분석하고 어떻게 하면 상투적이지 않고 신선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그가 연기하면 뭔가 다르고 특별하다고 느끼게 하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배우 김희원이 내일은 또 어떤 영화에서 스페셜한 캐릭터를 만들어낼지 기대하게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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