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투데이 심현영 기자] 탈북 의료인이 한국에서 동종면허를 취득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연령과 경제적 사유 등으로 국가고시 준비도 어렵고, 의료체계나 의학용어 등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며, 탈북 의료인의 자격인정제도 개선을 바라는 이가 있다. 8대째 내려온 가업을 이어가며, 서울 중구에서 ‘100년한의원’을 운영하는 정일경 원장이다.
정 원장은 함경북도 명천이 고향이고, 그의 집안은 대대로 한의의 길을 걸어왔다. 부친인 정일훈 선생은 평양의대 동의(한의)학부를 1기로 졸업한 원로의사, 전체주의 체제의 북한에서 중앙대학을 나온 엘리트다. 그러나 100년 이상 한의원을 운영하며 잘살아왔다는 이유로 북한당국의 박해를 받았고, 북한체제에 회의감을 느낀 정 선생은 1985년 탈북을 선택했다.
이후 남은 가족들은 더욱 차별을 당했고, 정 원장도 청진의대를 졸업하자마자 2차례의 탈북시도 끝에 2000년 국내로 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한 번은 실패하며 감옥살이를 했고, 한국 땅을 밟기까지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들었다. 또한 어머니와 작은 누나는 2003년·2006년에 국내로 데려왔으나, 큰 누나는 탈북을 실패해 처형당한 비극도 겪었다.
▲ 100년한의원 정일경 원장, 정일훈 선생, 한봉희 원장(왼쪽부터, 사진 = 정일경 원장 제공)
이런 정 원장은 한국에서 다시 한의과대의 정규과정을 마쳤고, 한의사 시험 역시 통과했다. 북한에서의 의대 졸업장과 의사 면허를 인정해주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국내서 만난 함경북도 길주 출신의 그의 아내도 동일과정을 거쳐 한의사 면허를 취득했으며, 현재 ‘100년한의원 일산점’을 이끌고 있다. 이로써 정일경·한봉희 원장은 ‘국내 최초의 탈북 부부 한의사’가 됐고, 8대에 걸쳐 내려온 치료법을 통해 다양한 난치성·만성질환을 치료 중이다.
특히 ‘화침(火鍼)’법으로 암, 당뇨, 고혈압, 퇴행성관절염, 디스크를 비롯한 내과·관절·대사질환 등을 다스리며 “용하다”는 입소문이 자자하다. 여기에 탈북민은 물론 각양각층 환자·고객들의 마음까지 치유하는 한의술을 펼치며, 의료봉사도 적극적이다.
정 원장은 “아버지께서 아들·며느리에게 전통한의와 침술비법을 전수해줬으며, 지금도 큰 가르침을 받고 있다”며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실력이 출중한 아버지가 의료자격을 인정받지 못해 너무나 가슴 아프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국가고시의 당락으로만 결정지을 것이 아니라, 탈북 의료인이 소정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북한에서의 경력과 자격 등을 인정받는 대승적 정책마련이 필요함”의 당부와 함께 “통일이 되면 고향에 가서 의술과 인술을 베푸는 것이 소원”이란 뜻을 밝혔다.
한편, 100년한의원 정일경 원장은 8대에 걸쳐 100년을 이어온 전통한의와 치료법 계승·발전에 헌신하고, 국민건강 증진 및 환자중심 진료실천에 정진하면서 탈북의료인 자격(면허)인정제도 개선과 탈북민을 위한 정착지원·의료봉사 선도에 기여한 공로로 '2017 올해의 신한국인 대상(시사투데이 주최·주관)'을 수상했다.
▲ 100년한의원 한봉희·정일경 원장 부부(사진 = 정일경 원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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