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투데이 이윤지 기자]반백년 한의사의 길을 걸어오며,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에도 발 벗고 나섰다. 특히 일본 백자의 도조(陶祖, 도자기 조상)로 추앙받는 ‘이삼평 도공’의 비문정정에 수십 년간 노력했고, ‘독도지킴이’까지 자처한 이가 있다.
‘명예독립운동가’ 반열에 오른 ‘독도한의원 이풍용 원장’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이 원장의 뜻을 지지한 아내 ‘이공재 대표’도 역사정립운동에 동참하며, 이들 부부의 삶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대표는 “한의사로서 평탄하게 살다가 어느 날부터 시민사회운동에 매진한 남편을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며 “하지만 ‘잘못된 역사를 고쳐야 후손들에게 올바른 뿌리를 건네줄 수 있다’는 남편을 믿고 존경하며, 부부 이상의 동지애로 함께해왔다”고 소회했다.
실제로 이풍용 원장은 오늘날까지 역사정립과 나라사랑운동 등에 각별한 정성을 쏟았다. ‘이삼평 도공 비문정정 추진운영위원장, 민족역사족보학회 부설 민족역사시민대학 명예학장, 민족족보학회 역사연구담당 상임부회장, NGO 환경운동본부 연기군지회장, 독도향우회 충청남도지회장, 3·1동지회 충청남도지회장’ 등의 활동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런 그는 1995년 일본 아리타현의 ‘이삼평 도공 비문’을 접한 후부터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에 적극 앞장섰다.
이 원장에 따르면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이삼평 도공은 ‘일본 백자의 효시’가 됐다. 1616년 백자광석(자기 원료)의 발견으로 일본에서 처음 백자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비문에는 버젓이 ‘정한(征韓, 한국정벌)’이란 글자가 새겨 있고, ‘이삼평 공이 스스로 길(조선침략)의 안내를 협조했으며 그 공적으로 귀화시켜 주었다’고 적혔다.
이를 시정하고자 이풍용 원장은 무려 20년간 주력하며, 일본 극우파 등과 맞섰다. 수없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의견수렴과 항의 끝에 비문정정도 성공했다.
그 결과 명예독립운동가로 인정되어 한국광복군 배지도 수여받았다.
나아가 이 원장은 독도로 주소지 이전, 한의원 명칭 변경, 독도지킴이 캠페인 전개 등 ‘우리 땅 독도수호’에 열성적이다. 또한 시인이자 동양철학박사 등으로도 저명한 그는 “계룡산이 만류역사의 새로운 시원지가 될 것”이라고 주창한다.
이 원장은 “조선 이성계, 대한민국 박정희·노무현 대통령, 심지어 일본 이토 히로부미 등까지 모두 계룡산 인근으로 나라의 중심(도읍·수도)을 옮기려했다”며 “그들이 계룡·세종지역에 천착한 이유를 생각하면, ‘계룡산이 한반도와 통일(두곡통일)의 중추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에 그는 오랜 세월 연구한 ‘두곡통일론’을 알리고자 ‘두곡 평화통일 운동본부’도 출범시켰다. 그러면서 현재 ‘두곡평화통일 시민운동’을 준비 중이다.
이풍용 원장은 “편한 노후도 마다하며 가시밭길을 걷는다고 주위에서 많이들 만류하지만, 내게 주어진 사명”이라며 “지금껏 헌신적으로 살아온 아내의 내조와 성원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한편, 독도한의원 이풍용 원장과 이공재 대표는 20년간 ‘이삼평 도공’ 비문의 오류정정에 헌신하고, 역사·국가관 정립과 후계세대 전승을 도모하면서, 독도수호·나라사랑운동 확산 및 보건의료서비스 발전 선도에 기여한 공로로 ‘2019 올해의 신한국인 대상(시사투데이 주최·주관)’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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