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야흐로 ‘말짱’이 대접을 받는 시대이다. ‘말짱’이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재치와 유머로 반론을 재밌게 펼치는 사람으로 재밌으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콕콕 짚어서 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뽑던 예전 문화와는 달리 지금 시대에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설득시켜야 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말짱’ 열풍이 불고 있다. 사회 문화가 변하면서 다른 이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져 가만히 있어서는 자신을 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나를 알려야 한다’라는 욕구와 함께 발표수업, 취업 면접, 자신의 세계에 대한 설명 등 ‘말짱’이 되고 싶은 이유는 제각각이다. ‘말짱’의 기본 조건인 조리 있는 설명, 재치 있는 표현, 간결하고 명확한 말하기는 현재 온오프라인 모두에게 인기이다. 또한 인터넷에서 자기를 표현하고 노출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자신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이슈가 되고 있다. 인터넷 카페, 개인 홈페이지, 댓글 문화 등을 통해 자신을 표현할 기회가 많아진 이들은 좀더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고서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거나 주목받기 힘들어졌다는 분석이다.
큰 프로젝트 발표를 앞둔 직장인들이나 취업을 앞둔 취업생들이 ‘말짱’이 되기 위한 연구를 하는 것은 물론 자녀가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발표하고 생활하길 기대하는 학부모들까지 대한민국은 온통 ‘말짱’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 말 잘하는 아이가 똑똑한 아이일까
‘말 잘하는 아이가 똑똑하다’는 등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말하기’와 ‘리더십’의 중요성이 점점 강조되면서 말 잘하는 아이는 ‘자신감이 있다’ ‘논리적 사고를 한다’ ‘공부도 잘한다’ 등으로 확대 해석되고 있다. 진짜 말 잘하는 아이가 똑똑하고 공부도 잘할까?
전문가들은 ‘말 잘하는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는 등식에도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말한다. 말을 하면서 공부한 것을 정리하면 기억의 효과를 높일 수는 있다. 머릿속에 담아두기보다 꺼내놓고 나면 문제점을 쉽게 파악할 수도 있다. 물론 이는 말하기를 효과적인 공부 방법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쪽에서는 취학 이전의 아이들의 경우에는 개별성이 강해서 섣부른 범주화가 위험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많은 대한민국의 학부모들은 살면서 필요한 모든 것, 특히 공부에 필요한 모든 것은 학원에서 가르칠 수 있다고 믿는다. 요즘 그들의 레이더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는 ‘과목’은 말하기다. 공부는 기본이고 활발한 성격에 세련된 화법까지 갖췄으면 좋겠다는 욕심은 더 이상 일부 욕심 많은 학부모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 열기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먼저 웅변학원은 스피치학원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이 연사가 힘차게 외치면 그만이던 일방적인 말하기는 시대에 뒤떨어졌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좋고 듣기 좋고 보기 좋은 말하기가 말하기 교육의 핵이다. 백화점 문화센터의 말하기 교실은 몇 년 전부터 인기 상종가를 치고 있다. 동화구연에 아나운싱을 가르치는 학원도 속속 등장했고, 연기를 배우듯 말하기를 배우는 학원도 있다. 말하기 교실을 찾는 이들은 주로 초등학생이다.
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말하기 교실에 보내고 있는 한 학부모는 “책과 언론을 통해 말하기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됐다. 맘 같아서는 직접 아이에게 말하기 교육을 해주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겠다. 그래서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말하기 교실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중·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말하기 교육은 학교 성적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말하기 교육이 ‘구술면접 대비’와 ‘반장·회장 만들기’로 변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심층면접은 외국어고등학교 등 특수목적고 입시의 중요한 과정이다. 덩달아 심층면접 비율을 높이는 대학도 매년 늘고 있다. 전교 회장 등의 이력은 면접에서 유리할 뿐 아니라 수시 리더십 전형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까지 준다. 말하기가 대입의 중요한 열쇠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강남의 한 유명 말하기 학원의 경우, 초등학생 주말반에 들어가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 학원 관계자는 “말하기 교육은 공부와 실력 등 모든 것을 갖춘 아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같다”고 했다. “요즘 학생회장 선거는 굉장히 치열하다. 13대1의 경쟁률을 보이는 곳도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는 소도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맞먹을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회장을 바라보는 학생들은 일찌감치 개인 교습을 통해 말하기를 배운다.”
■ 발표 잘하는 아이 만들려면?
말하기의 목적을 성적에 둔다면 아이들은 여러 학원들을 돌고 책 수백 권을 탐독해야 한다. 그러나 말하기의 궁극적인 목적은 의사소통이고 관계 만들기다. 아이가 자신의 개성에 맞는 말하기를 찾고 스스로 논리적인 말하기의 구조를 찾아가는 길은 꼭 학원에 있는 게 아니다. 지름길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숨어 있지 않을까?
-학원만 보내면 해결된다는 건 방관
전문가들은 발표력 부족의 원인이 가정에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아이를 지적하기에 앞서 가족 구성원의 태도를 먼저 점검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표현에 어눌한 아이의 부모들은 평소 아이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 이런 상황은 남들 역시 자기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을 것이란 두려움으로 남는다. 또 아이의 언어습관은 부모를 그대로 모방한다는 점에서 부모 스스로 먼저 말에 관심 갖는 자세를 보인다.
-아이가 말할 때 중간에 자르지 말라
사실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진지하게 들어주는 것이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이런 점은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다는 자녀와의 대화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발표력이 부족한 아이는 평소 가정에서의 표현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또 가능하다면 아이가 자연스럽게 일어서서 설명하게 하고 가족들이 모두 함께 듣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특히 이해가 안 되거나 답답한 부족이 있어도 중간에 끼어들어 말을 자르는 것은 좋지 않다. 나이를 떠나 아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것이 대화의 기본이다. 질문은 말이 끝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재미있게 접근하라
저학년은 종이인형극이나 상황극을 하며 아이의 발표력을 높일 수 있다. 손인형이나 마이크 등은 효과를 높여줄 수 있는 만점짜리 소품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4,5학년만 되도 부모와 인형극 등을 하는 것이 유치하다고 생각한다. 이럴 땐 아이가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 스포츠 등 특정한 주제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발표 자료를 부모가 대신 정리해 주는 것은 독
아이가 발표수업을 하면 바빠지는 부모들이 있다. 부모는 발표문을 대신 정리해주고 아이는 자료를 달달 외우는 경우다. 때론 부모 대신 과외교사가 해주는 일도 있는데 모두 독(毒)이다. 어눌하게 한 문장을 정리하더라도 스스로 해야 아이가 얻는 것이 있다. 물론 이해가 안 가는 학습내용을 부모가 설명해주거나 발표문이 간결하게 정리 되었는지, 그림이나 도표 등이 제대로 준비 되었는지를 확인해 주는 정도는 괜찮다.
■ 발표력이 왜 중요한가
‘침묵이 금’이던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났다. 말솜씨가 그 사라의 가치를 따지는 필수요소인 시대다. ‘몸짱’에 이어 ‘말짱’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을 정도니 말이다. 아이들은 발표를 통해 ‘논리적 말하기’를 배우고 이를 생활에 적용한다. 대체로 부모 세대에 비해 발표력이 왕성해졌지만 발표에 소극적인 아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문제는 학년이 높아질수록 소극적성의 비율은 높아진다.
때로는 알면서 대답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비교적 고학년일수록 두드러지는데 “내가 대답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 대답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거나 더러는 “이미 다 아는 내용”이라고 생각하는 다소 건방진 생각을 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발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다른 아닌 현장 교사들이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가능성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아이가 스스로 무언가 배우려는 의지가 있는지 그런지 않은지는 발표에 임하는 자세를 보면 바로 드러난다”면서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아이는 대부분 학업 성취도가 높다”고 말했다. 또 “안타깝게도 부모들은 아이가 발표에 적극적인지 아닌지를 잘 모른다”면서 “내 아이는 외향적이니까 발표도 적극적으로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큰 오해”라고 말한다. 발표의 중요성은 최근 초등학교마다 조별수업 등이 보편화되면서 더욱 강조되고 있다.
게다가 대입은 물론 기업 입사에서도 면접의 비중이 확대되는 추세다. 따라서 어려서부터 논리적으로 말하는 교육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당연한 추세다. 단계적인 말하기 훈련은 초등학생 때부터 꼭 필요하다.
-1, 2학년=읽기와 쓰기보다는 말하기에 비중을 둔다.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주로 낱말이나 10∼20자의 짧은 문장에 담아 표현하도록 도와야 할 때다. 집중력과 어휘력을 높이는 끝말잇기와 수수께끼는 물론 그림을 그린 뒤 이를 설명하거나 동화를 듣고 동화 속 인물이 돼 이야기해보는 등의 놀이가 효과적인 훈련이다.
말하듯 동화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게 하는 것도 좋은 훈련법이다. 이때 부모는 아이에게 많은 말을 들려줘야 한다. 책을 읽어준다면 어감이 다른 여러 표현을 되풀이해 아이의 사고력을 길러준다. 중간중간 질문을 던져 아이가 느리게 말하더라도 완전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만, 단답형 질문은 피한다. “친구와 싸웠니”라고 묻기보다는 “친구와 왜 다퉜고, 싸운 뒤 네 기분은 어때!”라고 질문하라는 것이다.
아이가 자유롭게 말하도록 내버려두되,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간단한 이유를 대도록 해 논리력을 키워준다. 다른 사람의 말에 대한 자신의 생각 역시 이유를 대서 말하도록 한다. 또 우물우물 말하는 아이에게는 입을 크게 벌려 얘기하도록 돕는다. ‘아’와 ‘오’ ‘우’의 발음만 또렷해도 말소리가 더욱 선명해진다.
-3, 4학년=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나름의 타당한 근거와 자료를 바탕으로 설명할 수 있는 때다. 그런 생각에 살을 붙여 한두 문단 정도 확대해 말하도록 지도한다.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의견 말하기나 자신과 다른 의견을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자기 생각과 비교하기, 질문 만들기 등을 유도하는 것이 훌륭한 훈련법이다. 자신의 생각을 밝히면서 상대방 의견을 반박하려면 더욱 설득력 있는 이유를 대야 하고 그러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 독서 후 요점을 정리해 말한 뒤 부모가 토론 상대로 나서 정확히 이해했는지 확인까지 하면 효과는 배가된다. 학교에서는 친구가 부모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아이가 1분 정도 혼자 연설하는 훈련은 표현력 기르기에 효과 만점이다. 미리 주제를 정해주거나 그날 있었던 일 중 하나만 6하원칙에 맞춰 최대한 자세하게 말해보도록 한다. 연설이 끝나면 ‘내용은 재미있는가’, ‘정해진 시간을 잘 지켰는가’, ‘발음은 정확했는가’ 등 평가표를 작성해본다.
-5, 6학년=‘생각, 입장, 견해+이유, 까닭, 중심 근거+설명, 보조 근거’와 같은 식으로 순서에 따라 논리적으로 말할 때다. 자신과 견해가 다른 주장에 대한 근거를 생각해보고 쟁점은 무엇인지, 또 장단점은 어떤지 비교할 수 있는 찬반 토론이 올바른 훈련법이다. 스스로 자료를 찾고 이것을 근거로 사실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남을 설득하기도 하고 상대와 협상하기도 하는 공부다. 아이는 자료를 수집하면서 많은 지식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논리를 만든다.
발표 수업도 훈련으로 더할 나위 없다. 먼저 아이가 말하고자 하는 목적을 정하고 소재를 찾아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도록 돕는다. 일단 수정과 보완까지 끝낸 글을 보지 않고 발표해보고 익숙해지면 글을 쓰지 않고도 말할 수 있도록 훈련한다. 그래야 갑작스런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술술 대답할 수 있다. 긴 문장은 피하고 주어와 술어가 일치하는지 확인한다. 말의 강약과 장단을 조절할 줄 알면 아이에게 더욱 큰 자신감이 생긴다. 평소 문장마다 중요한 단어나 내용은 억양을 높여 강조하고 장단을 타듯 자연스레 말하는 습관을 들인다.
목소리가 작거나 말이 갈수록 빨라질 경우 녹음한 목소리를 들려주면 아이 스스로 고친다. 늘 찡그린 얼굴로 말하는 아이라면 비디오로 찍어 보여주거나 발표하면서 거울을 들여다보게 한다. 바른 자세는 기본. 두 다리는 어깨 너비만큼 벌리고 두 손은 살며시 주먹을 쥔 채 고개가 들리지 않도록 턱을 약간 안으로 당기면 발표하기에 편안한 자세가 된다.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에게는 친척이나 친구 앞에서 얘기할 기회를 만들어준다.
사회 집단 안에서 말하기와 듣기는 의사소통의 기본적인 요소이며 사람들은 말하기를 통해 자신과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또 말하기는 기본적인 의사소통 외에도 지적 사고 작용이나 학업성취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말하기 능력은 학습 발달을 좌우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은 글쓰기가 말하기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그 말은 맞는 말은 아니다. 글은 쓰기 전에 생각을 다듬을 수 있는 시간이 있고, 얼마든지 고쳐 쓸 수 있지만 말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말하기는 언어활동으로 사고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말하기 능력은 높은 수준의 사고력을 요구한다.
전문가들은 “말하기 문제는 두려움에서 기인하기도 하기 때문에 학원에서 말하기 경험을 확대시켜줄 수는 있다”며 “그러나 학원에서 가르치는 기술 위주의 말하기 교육은 아이들의 말하기를 획일적으로 만들 우려도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가족과 친구,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생활 속에서 정서적으로 교류하고 사고하며 말하기를 배우는 것이 가장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마음이 담긴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이들의 말하기 능력을 신장시킬 수 있는 첫 번째 단추가 될 것이다.
-박지혜 기자-
<발표 행동 평가척도>
● 발표 불안의 일반적인 증상
- 발표하는 일을 피하거나 미루고 싶다.
- 발표할 때 앞을 똑바로 안 본다.
- 긴장을 하다보니 말을 서두른다.
- 남들 앞에 서면 말이 머릿속에서 안 떠오른다.
- 다른 사람이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목소리가 작게 나온다.
- 말이 앞뒤가 맞지 않고 분명하지 않다.
- 목소리가 떨리고 억양 등이 어색하다.
- 손을 비비거나 몸을 돌리는 등 손발이 어색하다.
-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얼굴이 붉어진다.
● 발표 불안 극복을 위한 유의사항
- 의복 · 용모를 단정히 해서 자신감을 갖는다.
- 추상적이거나 복잡하고 전문적인 용어 등을 피한다.
- 발표 도중 심호흡과 근육이완을 반복하면 긴장이 완화된다.
- 말을 되도록 천천히 하고 발음을 분명히 한다.
- 눈은 청중을 골고루 응시한다.
- 주제에 관련된 내용을 가결하게 말하라.
- 나 말고 다른 사람도 대중 앞에서면 떨린다고 생각하라.
- ‘이미지 트레이닝’도 효과적이다.
- 합리적이고 긍정적으로 사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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