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백산 자락길은 경북 영주를 중심으로 충북 단양 경계에 걸쳐 있으며 소수서원을 출발해 순흥향교-죽계계곡-초암사-달밭골-비로사-금선정-풍기온천-죽령옛길-죽령-용부원리-대강면까지 약40km에 이르는 코스다.이 자락길은 전구간이 9개구간으로 구성돼 있고 코스마다 볼거리와 이야기 거리로 가득 차 있다.
1구간은 향교길로 소수서원을 거쳐 순응향교-순흥호-삼괴정까지 3,8km 거리로 약 60분 정도가 소요된다. 볼거리로는 금성단, 순응향교, 삼괴정이 있다. 2구간은 죽계구곡길로 배점분교(삼괴정)-죽계구곡-초암사에 이르는 3.3km정도 되는 길, 시간은 약60분 정도 소요된다. 죽계구곡, 초암사가 볼거리다. 3구간은 달밭골길로 초암사-달밭골-비로사-삼가리 길이다. 산촌생활과 계곡 비경을 볼 수 있는 길로 5.5km정도 되고 시간은 약100분 정도가 예상된다. 4구간은 시거리길로 삼가리-삼가분교-욱금-삼가호길로 3.7km로 60분 정도 소요되며 삼가계곡, 삼가호가 볼거리다. 5구간은 십승지길로 삼가호-장생이 마을 -히여골로 4km정도되고 시간은 약60분 정도 예상된다. 승지란 아무도 쉽게 접근 할 수 없는 곳으로 첩첩 산중 오지를 일컫는 말의 의미도 담고 있다. 과거 북족 평안도, 황해도에서 피난 내려와 정착해 사는 주민들이 많이 있었다. 볼거리는 금선정, 십승지이다.
6구간은 과수원길로 히여골-장수골-풍기온천-희방사역까지 5.4km거리로 80분 정도가 예상된다. 볼거리로는 찰방역터, 풍기온천, 희방사역 등이 있다. 7구간은 죽령옛길로 희방사역-주막터-죽령에 이르는 길로 2.8km거리, 시간은 50분 정도가 소요되는 구간이다. 죽령 길과 주령 정상 주막에서 즐기는 막걸리 한 잔은 시원하게 갈증을 해소시켜준다. 이어 8·9구간은 영주시가 아닌 단양시에 해당하는 구간으로 8구간은 용부원길이다. 죽령-용부원리-용부사-죽령 터널까지 3.9km 길로 60분정도가 예상된다. 고려시대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보국사지에 자리한 머리없는 불상이 볼거리다. 마지막 9구간은 장림말길로 죽령 터널-죽령역-대강면에 이르는 길로 4.7km가되고 80분정도가 소요된다. 죽령역과 또아리굴이 볼거리다.
이런 자락길에 숨어 있는 이야기로는 순흥 배점마을에서 대장장이 아들로 태어난 배순은 천민 출신이라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소수서원 강학당 밖으로 흘러나오는 유생들의 글소리를 듣고 공부했다. 퇴계선생이 이를 가상히 여겨 안에서 유생들과 같이 공부를 하게 했고 그는 후일 성리학의 거성 퇴계 이황선생의 유일한 천민 제자가 됏다. 그는 퇴계가 운명 한 뒤 삼년 상복을 입고 선조 대왕 승하시에도 슬퍼하며 3년상을 치렀다. 곡하는 소리가 슬퍼 나라가 감탄해 정려를 내렸다. 또 주민들에게 양심적이고 좋은 물건 만들어 제공하자 이에 대한 칭찬이 자자해지고 마을사람들은 대장간 점포자리가 있던 곳을 배순의 이름을 넣어 ‘배점’이라 불렀다. 또한 배순을 효자, 충신으로 기리게 되고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배충신’이라 부른다. 배점마을 입구에는 수령이 600년가량 된 세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는데 이곳을 ‘삼괴정’이라 부른다. 여기에 배순의 정려각이 있다. 이 마을은 배순을 동신(洞 神)으로 모셔 매해 정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마을 뒤 초암사 뒷산은 배충신이 선조께 3년제사를 모시던 장소라 해서 나라 國, 바랄 望자를써 ‘국망봉’이 됐다. 또한 죽계계곡은 소백산 계곡 중 가장 큰 계곡에 속한다. 고려후기 문장가인 근재 안축의 경기체가 ‘죽계별곡’의 배경이 된 계곡이다. 이 계곡은 월전계곡의 개울물이 초암사에서 제1곡을 이루고 배점마을 심괴정에 조금 못미치는 제9곡에 이르기까지 약2km 거리다. 이 계곡은 영조초 순흥부사를 자낸 신필하가 처음 정했고 퇴계가 다시 확인했다.
신필하는 계곡물을 따라 비경 아홉구비마다 이름을 정했고 퇴계는 소수서원에서부터 거리를 잰 점이 다르다. 죽계계곡의 제1곡은 백운동 취한대, 2곡은 금성반석, 3곡은 백우담, 4곡은 이화등, 5곡은 목용담, 6곡은 청련동애, 7곡은 용추비폭, 8곡은 금당반석, 9곡은 중봉합류라 칭해 졌다. 또 달밭골은 달뙈기만한 밭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달밭골이라는 말도 있지만 국망봉과 초암사의 바깥 골짜기라는 의미가 더 설득력이 있다. 이 달밭골은 화랑도들이 무술을 익혔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어 현재는 요양하는 사람이나 무속인들이 머무르고 있다. 이외 봉우리가 닭형상을 닯아 ‘금계바위’라 불리우는 곳도 있고 소백산 주종인 1,439m의 비로봉이 있다. 죽령길로 접어들면 대나무가 없다. 옛날에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학자 조목선생은 대강면에서 죽령고개를 넘으면서 “장림 무장림, 죽령 무즉령”을 읊었다. 장림에는 긴 숲이 없고 죽령에는 대나무가 없다는 뜻이다. 명종3년 단양군수를 지낸 퇴계가 그의 형(은계)이 충청감사로 제수됨에 풍기군수로 자리를 옮겼다. 잔운대, 촉령대, 소흔교는 퇴계가 고향 예안을 오가는 형을 마중·배웅하던 죽령옛길일부다. 근데 왜 죽령, 장림이라 이름이 붙여졌는지에 대한 일화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한편 희방사는 기블 喜, 보方 자로 기쁨을 주는 사찰이라는 뜻을 담고 신라 선덕여왕 12년 두운조사가 왕명으로 창건했다. 이 사찰에서 조선시대에 세종이 만든‘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세조가 합쳐 ‘월인석보’를 만들었다. 이 책 앞머리에는 훈민정음 언해본이 실려 있어 가치가 높다. 이처럼 자락길에는 많은 이야기와 볼거리들이 풍부하다. 또한 이 길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스토리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로 선정해 시범사업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시작을 하는 시기로 약간의 미흡한 부분과 제대로 시설을 갖추지 못한 부분이 있지만 오히려 군데군데 지역은 처녀지 같은 인상과 새로운 느낌을 주는 곳도 많다. 이밖에 주변 볼거리로는 영주 부석사, 소수서원 등이 가깝게 있고 옛날 숙박을 체험 할 수 있는 선비촌도 있고 특히 풍기 유황 온천은 피로를 푸는 휴식처가 되고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새로운 삶의 방식을 풀어가는 방법을 전통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이 지락길을 통해 배우고 느껴 보는 계기가 되면 좋을 듯싶다.
정성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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