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투데이 장수진기자]
홍대 클럽을 주 무대로 활동하는 인디밴드 Hi, Mr. Memory의 보컬 ‘기억’(본명:박기혁)씨. 그는 포크 음악 정신을 기반으로 곡의 성격에 따라 포크&블루스, 포크&락, 포크&재즈 등장르를 혼합한 음악을 추구하는 싱어송라이터다. 주로 홍대 클럽에서 공연을 하고 소설가, 시인 등 작가들과 함께 하는 북 콘서트의 단골 게스트로도 활동한다. 감미로운 음색으로 시적인 가사를 읊조리듯 부르는 그의 노래는 서정적인 색채가 강하다. 무엇보다 가슴에 와 닿는 가사는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는 힘이 있다. 기억씨의 노랫말이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은 그의 평범하지 않은 이력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의 어린시절은 혼자 지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고 형제도 없던 기억씨는 해질녘 함께 놀던 친구들이 집에 불려 들어가면 혼자 쓸쓸히 집에 들어와 그림을 그리고 책을 보고 음악을 들으며 부모님을 기다렸다. 그때의 기억을 담아 그는 고등학교 때 <초승달>이란 곡을 만든다. 또 교회에서 만난 선배, 친구들과 함께 연극과 음악을 얘기하고 창작곡도 만들어 서로 들려주고 평하며 사춘기 시절을 보낸다. 교회에서 연극을 보고 그때부터 연극이 좋아져 배우를 꿈꾸었고 안양예고에 합격하지만 부모님 반대로 일반고에 진학한다. 수업시간 눈은 칠판의 글씨를 쫓고 있으면서도 그는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에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자신이 있을 곳은 연극판이었고 연극을 공부해야 했다. 그래서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고등학교를 자퇴한다. 매일 연극을 보러 다니고 공부도 더 열심히 했다. 뚜렷한 목표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에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렇게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다. 그리고 군 제대 후 그는 돌연 음악을 하기 위해 한 학기를 남겨두고 복학을 포기한다. 그는 선배와 함께 트럭에 악기와 장비를 실고 충북 제천의 시골 마을로 들어가 칩거를 시작한다. 그곳에서 7,8개월여 시간동안 선배와 함께 곡을 만들며 시간을 보낸다. 밭에는 상추와 파도 심고 곡을 만들어야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도 자유를 만끽하며 보낸 시간... 그렇게 만든 곡은 백곡이 넘지만 그가 만족스러워 한 곡은 단 한곡뿐이었다.
기억씨는 말한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고. 시간이 흐른 지금 그가 만들어낸 곡들은 제천에서의 생활과 느낌이 묵혀져 나온 것이라고.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이 도시도 수 십년 전, 그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살았을 그 때에는 제천의 시골마을처럼 논과 밭과 들과 시냇물이 흘렀을 거라고... 그런 것들을 상상하며 그는 이 도시에서 세상을 삶을 노래로 표현한다.
기억씨는 음악이 너무 좋았다. 한때 연극이 좋아 극단 산울림에서 활동도 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이 계속 하고 있었던 것은 음악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곡을 만들었고 연극을 하고 있을 때에도 음악은 계속하고 있었다. 지나고 보니 자신이 글을 썼던 것도 연극을 했던 것도 음악을 하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기억씨는 무대에 서는 것이 좋고 노래 부르는 것이 좋아 노래할 수 있는 무대만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심장병 어린이 돕기 공연이었고 그 무대를 시작으로 신촌에서 활동하다가 우연히 홍대 클럽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 그 후 꾸준히 홍대 클럽과 상상마다 등 소극장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한다. 지금은 1.5집 앨범 준비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기억씨의 앨범 수록곡은 모두 자신이 작사, 작곡한 곡들이다. 문예창작을 전공한 이력 때문인지 노랫말이 시적이면서도 이야기를 담고 있다. 1.5집의 타이틀곡인 ‘장마’는 장마라는 주제로 노래를 만들고 싶어 해마다 ‘장마’로 2곡씩 만들어왔지만 매번 만족스럽지 않아 발표하지 못했었다고 한다. 그러다 작년 말에야 자신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을 담은 ‘장마’를 완성했다.
기억씨는 노래하는 이야기꾼이다. 그의 공연장에는 이야기가 함께 한다. 언젠가 카페에서 어머니 생신파티를 해주다 활짝 웃는 어머니 입속에 치아가 제대로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음악을 해서 돈을 벌면 어머니 치아부터 해주자고. 그 꿈이 이뤄졌다. 공연을 보러 왔던 한 치과의사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기억씨에게 전화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오라고. 그렇게 기억씨의 작은 소망 하나가 이뤄졌다. 기억씨는 또 결심했다. 그분에게 평생 노래로 갚겠노라고.
기억씨는 특히 작가들과 인연이 깊다. 북 콘서트에 참여하면서 시인, 작가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신경숙작가의 소설<엄마를 부탁해>를 모티브로 곡을 만들고 최근에는 이대흠시인의 <울엄니>라는 시에 곡을 붙이기도 했다. 모두 5월에 나올 1.5집에 수록될 곡들이다.
기억씨는 말한다. 음악을 잘 해서 성공하고 싶다고. 그래서 소극장을 만들어 그 곳에서 100회 200회 장기공연을 하고 싶다고. 기억씨는 지금 행복하다. 음악을 할 수 있고 음악을 하고 있으니까. 그가 가장 힘들었을 때는 돌이켜보면 음악을 쉬고 있을 때였다. 기억씨는 알고 있다. 자신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행복한 기억씨의 음악이 더 많은 사람들 가슴에 따스한 이야기를 안겨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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