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투데이 장수진기자]
당신은 아무도 밟아 보지 않은 땅을 밟아 본 기억이 있는가?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이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오지. 그 위에 내 발자국을 꾹 찍어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파키스탄 전문가로 유명한 다큐사진작가 유별남씨. 그는 오지를 다니며 사진작업을 하다 그런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의 기분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한다.
2009년 5월 EBS<세계테마기행>에 ‘중동의 붉은 꽃, 요르단’에 출연해 대중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 준 유별남씨는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포토저널리즘을 전공한 다큐사진작가이다. 대학 졸업 후 한 달 일정으로 떠났던 네팔 여행에서 다른 여행객들로부터 파키스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해 파키스탄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2000년 파키스탄에 첫발을 들여놓은 여정이 6개월로 늘어났다. 그 정도로 파키스탄의 매력에 푹 빠져 그곳의 상상을 초월한 거대한 자연과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는 그 후 파키스탄을 카메라에 담는 작업을 10여 년 동안 계속해 왔다. 그 결과물이 6월 파키스탄 내셔널갤러리에 전시된다. ‘한국인의 렌즈를 통해 본 파키스탄’이란 타이틀로 유별남씨의 개인사진전이 열린다.
#. 그의 이야기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도구 카메라.
유별남 작가는 2004년 무대미술 설치 작업 도중 추락사고로 발목이 으스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1년 동안 기브스를 하고 누워만 있어야 했던 시간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tv 리모컨 버튼을 누르는 게 고작이었다. tv에서 방송하는 다큐 프로그램을 즐겨 보던 그의 눈에 고등학교 때부터 들고 다녔던 카메라가 띄었다. 여행하면서 결심했던 것들이 되살아났고 사진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대학원에 진학해 포토저널리즘을 공부했다. 포토저널리즘을 공부하면서 그는 다양성에 눈을 뜨게 됐다. 자신의 이야기를 미술이나 음악, 글로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가장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수단은 카메라였다. 그렇게 카메라를 통해 ‘다양성’에 눈을 뜨게 되고 그것을 담아내 세상에 이야기하는 다큐사진작가가 되었다.
#. 그가 바라 본 세상은 다큐다.
다큐는 그 사람의 사상과 의식을 담는 작업이다. 그는 사진 작업에 들어가기 전 철학 서적이나 사회학 관련 서적들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한다. 그렇게 작품 주제를 정하고 기획한다. 그가 대상을 바라 볼 때 카메라도 대상을 쫓는다. 작가와 카메라가 하나 되어 대상을 탐구하는 것이다.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셔터를 누르느냐에 따라 카메라에 담기는 내용이 달라진다.
그가 세상에서 포착한 것들은 무엇일까? 유별남이란 이름을 수식해 주는 단어는 ‘오지 탐험가’, ‘한국의 인디애나 존스’, ‘파키스탄 전문가’, ‘어린이를 찍는 사진작가’ 등 다양하다. 파키스탄, 국경지대, 전쟁과 기아 그 속에서 희생당한 아이들... 그가 살아 온 환경과 저 먼 나라의 현실은 너무도 달랐다. 열 살 정도 되는 아이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다이너마이트를 들고 광산 좁은 굴에 들어가고, 전쟁으로 몸이 온전하지 않은 아이들과 9살이 되도록 고기음식을 단 세 번 먹어 봤다는 소녀의 이야기까지...그래도 그 아이들은 순수하고 밝게 웃을 수 있는 영혼을 갖고 있다. 그렇게 아이들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다보니 오지에 사는 아이들을 위한 봉사로 이어지게 됐다.
#. 사진에 이야기를 담다.
작년에는 월드비전을 통해 5개국을 찾아다니면서 자원봉사자로 참여했었다. 열악한 환경의 다양함에 놀라면서도 그런 현장들을 너무 많이 보게 되니 오히려 그런 환경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그곳에서 그 아이들과 똑같이 먹고 생활하면서 금방 익숙해졌다. 그러면서 그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그 아이들에게 공부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 방법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개인의 힘은 미약했다. 그래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카메라로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 그의 마음이 느끼고 생각 한 것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 사람들이 그의 사진을 통해 먼 나라 다른 세상을 사는 아이들에게도 귀 기울이고 관심을 갖는다면 세상이 조금은 변하지 않을까. 그의 사진은 사람들 생각을 변화시키는 이야기의 힘을 지니고 있다.
#. 대상을 배려하는 친절한 작가 유별남.
그는 카메라가 지닌 권력의 힘을 안다. 사진을 찍으면서 그가 세운 원칙은 대상을 향해 무조건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는 것이다. 그가 얻고 싶은 이미지가 있으면 그 대상과 충분히 소통하고 난 후 대상이 허락했을 때 카메라 렌즈를 맞춘다. 대상이 담배 피우라고 하면 담배 피우고, 그들의 음식을 먹으라고 하면 입에 맞지 않아도 먹는다. 그렇게 며칠 지내다보면 대상이 비로써 카메라를 허락한다. 지난 3월 파키스탄 설산에서 기도하는 노인을 보고 강한 비주얼에 이끌렸던 기억이 있다. 그들은 기도할 때 방해 받는 것을 가장 싫어해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발길은 기도하는 노인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꾹 참았다. 작가로써의 욕심보다 대상에 대한 배려가 우선이었다. 비록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지만 그 이미지는 그의 가슴속에 강하게 새겨져 있다. 그 사진은 지금 그만이 볼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도전을 즐기는 작가 유별남. 그의 머릿속에선 또 다른 계획이 준비 중이다. 그동안 꾸준히 하고 있는 작업의 연장이기도 하다. 그가 담고 싶은 이야기는 ‘국경’이란 주제를 통해 사람들에게 또 다른 세계를 보여 줄 것이다. 그의 마음이 잡아 낸 이미지가 우리들 가슴에 어떤 울림을 줄지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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