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투데이 장수진기자]
'손님들의 이야기로 채워가는 공간이 되다'
우리나라 최초로 커피를 마신 사람은 다름 아닌 고종이었다. 을미사변 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지낼 때 처음으로 커피를 마셨는데 그 후에도 커피를 애용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커피는 일본인과 특수 계층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음료였으나 해방 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일반 대중에게 알려졌다. 1950년대 인스턴트커피 도입 후 우리나라에 다방문화가 대중화 되었고 이후 1970년대 DJ다방인 음악다방이 유행했다.
IMF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7월 미국의 스타벅스 1호점이 이대 앞에 오픈하면서 빠른 속도로 유사한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속속 등장했다. 커피빈, 할리스, 파스꾸찌, 탐앤탐스, 투썸플레이스, 카페베네 등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빌딩가와 대학가 주변, 상권이 좋은 지역을 차지하면서 주변에 있던 자가 커피점은 A급 상권에서 밀려나야 했다.
자가 커피점은 A급 상권을 포기하고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정형화 된 커피전문점이 아닌 규모는 작지만 테마와 독특한 개성을 살린 인테리어로 이색적인 카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이색 카페들이 하나 둘 모여 카페거리를 형성하면서 입소문을 타고 이색 카페를 즐기는 마니아들을 끌어들였다. 홍대나 인사동, 삼청동, 성수동, 신사동 가로수길 등의 카페거리가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
그런데 최근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택가 골목에도 카페가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근 단독 주택들이 밀집해 있는 서대문구 연희동은 크고 작은 카페가 꾸준히 늘고 있다. 오래 된 단독주택을 개조한 카페부터 테이블 몇 개 안되는 작은 카페까지 다양하다. 카페가 자꾸 느는 것을 보면 카페를 찾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고 수익이 나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이 앞선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몇 개 되지 않는 테이블에 손님이 앉아 있는 것을 보기란 쉽지 않다. 과연 그들이 수익을 낼 수 있을까 의문이다.
그래서 찾아 봤다. 오랜 경력과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카페를 운영하며 팬카페까지 갖고 있는 김현민씨를 통해 카페에 대한 환상과 현실 그리고 그가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카페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충정로에 위치한 카페 가베나루 대표 김현민씨는 커피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과 오랜 경력을 바탕으로 성공한 바리스타다. 그가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점 틈새에서 자가 카페를 운영하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카페 운영 철학과 커피를 대하는 마음에 있다. 카페로는 특이하게 팬카페까지 갖고 있으며 타 지역과 일본에서도 일부러 찾아오는 단골이 많다. 점심시간에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고 저녁시간에도 마찬가지로 자리를 잡기 힘들다.
성공을 꿈꾸고 오픈한 카페들이 너무 쉽게 무너지는 현실에서 그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의 이야기에서 카페를 준비 중인 분들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담은 커피 한 잔으로 이야기를 끌어내는 바리스타 김현민'
“요즘 커피 교육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교육을 받고 카페를 오픈하는 분이 많은데 그렇게 해서 많이 무너진다. 정말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오픈하면 99% 망한다. 실제 카페들이 모여 있는 곳에 스타벅스나 커피빈 등 틈새로 작은 카페들이 있다고 하지만 스타벅스나 커피 빈이 들어서면 거기가 다 흡수 한다”
김현민씨가 카페 운영을 목표로 바리스타를 꿈꾸며 커피 교육을 받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 그는 그동안 커피 교육도 많이 시켜왔고 동료와 프랜차이즈를 같이 만든 적도 있었기에 카페를 운영한다는 것이 얼마나 또 어떻게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안다고 했다.
카페를 운영하는 것은 몇 주 커피를 배운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커피는 알수록 이해하기 힘들다고 그는 말한다. 실제 커피를 알려면 오랜 시간을 갖고 커피의 변화과정을 읽어낼 수 있어야한다. 로스팅부터 블랜딩하는 법, 물의 온도, 드립하는 과정 등 복잡하고 다양한 과정이 있지만 그것들이 책과 강의를 통해 듣고 배운다고 다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학 공식처럼 커피 다루는 공식에 맞춰 하면 될 것 같지만 실제 커피의 맛은 마시는 사람의 취향과 느낌에 따라 다 다르기에 바리스타 입맛에 맞는다고 손님 입맛에 맞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리스타가 자기 입맛이나 커피 전문가가 말하는 맛만을 추구하며 이거다라고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 김현민대표의 생각이다.
‘커피는 소통의 도구다’
“카페는 커피를 통해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다. 그러니 쉬운 게 아니다. 그러니까 몇 년 동안 뿌리를 내려야 한다. 스타벅스 같은 경우 수 십 년의 노하우와 이야기의 뿌리가 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그는 어떤 일이든 뿌리 없이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부단한 노력과 땀, 사람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믿는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선호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먼저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커피를 알아가고 모든 도구를 알아간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커피 내리는 기술적인 것만 배워서는 사람을 감동 시킬 수 없고 이야기를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카페를 운영하는데 테마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테마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인 것이다.
‘공간의 주인은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카페는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색깔을 입히지 않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만나고 이야기하고 자기 스트레스를 푸는 곳이다”
그는 카페를 운영한다는 것은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도 좋아야 하고 사랑해야 하고 사람을 감동 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카페에 들어서면 먼저 높은 톤으로 밝게 손님을 맞는 그와 동료들이 있다. 분주하게 커피를 내리고 손님들에게 서빙을 하는 모습도 활기에 넘친다. 커피 한 잔을 주문 받더라도 어떤 맛을 선호하는지 묻는다. 손님이 커피를 다 마시면 한 잔 더 권하는 인심도 후하다. 처음 주문했던 메뉴가 아니어도 괜찮다. 점심시간처럼 주문이 밀려 있지 않는 한 기꺼이 정성과 마음을 담은 커피 한 잔을 더 내려 준다. 사소한 것 같지만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서비스다.
카페 가베나루를 찾는 사람들은 서비스에 감동 받고 그곳을 자기 공간처럼 편하게 이용한다. 그러다 보니 어떤 손님은 그곳에서 잊고 있었던 옛 꿈을 기억해내고 그림을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그 시작은 가베나루에 있는 초등학생용 교실 의자에 그린 예쁜 그림이 말해주고 있다. 어떤 손님은 자신의 사진작품을 기증해 카페 내부를 풍성하게 꾸미고 가베나루를 찾는 손님들이 모여 커다란 곰돌이 인형이 함께 제작해 카페 입구에 설치해 주기까지 했다.
이 모든 것이 가베나루를 자기 공간처럼 편하게 이용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이다. 가베나루를 찾은 손님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자신의 흔적을 남기면서 가베나루엔 수많은 이야기와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 사람냄새 물씬 나는 공간이 되었다.
‘커피 한 잔에 마음을 담다’
“마셔서 기분 좋은 커피, 정이 담긴 커피, 그 사람의 감정이 담긴 커피가 좋지 않겠나”
김현민대표는 똑같은 커피인데 맛이 다 다르고 그만큼 커피가 어려운 것이라고 한다. 커피를 내리는 순간의 상황과 감정에 따라 커피 맛이 다 달라진다고 하니 커피 한 잔 한 잔을 내리는 그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맛있는 커피를 내리려면 그 사람의 마음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한다. 생각이 들어가고 사상이 들어가면 좋은 커피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머리를 비우고 가슴을 담아야 비로써 맛있는 커피가 나온다고 믿는다. 그의 커피에 대한 철학과 애정은 카페 가베나루를 찾는 손님들이 먼저 느낀다. 사람을 먼저 이해하고 마음을 담은 커피 한 잔은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도 따라 올 수 없는 그만의 브랜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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