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투데이 장수진기자]
SBS 드라마 '이웃집웬수' 에서 선옥役
중견탤런트 정재순은 그동안 수많은 드라마에서 다양한 캐릭터의 엄마를 연기해 시청자들에게 친숙한 연기자로 알려진 배우다. 그녀는 지난달 31일 종영한 SBS주말드라마 ‘이웃집 웬수’에서 ‘선옥’역을 맡아 이상적인 어머니상을 보여줘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드라마 ‘이웃집 웬수’는 이혼과 재혼이라는 소재를 다룬 드라마로 이혼한 부부가 우연히 이웃해 살면서 또 다른 전쟁을 치르며 서로 웬수처럼 지내지만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상처를 극복하면서 웬수 같았던 전 남편, 전 부인이 서로의 인생에 지지자가 되어주는 과정을 주변인물들의 사연과 함께 감동적으로 그려내 높은 시청률을 올리며 인기리에 막을 내렸다.
탤런트 정재순은 극중 주인공 지영(유호정)과 하영(한채아)의 엄마 ‘선옥’역을 맡아 열연했는데 선옥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앞서 있는 여자로 헌신적이며 사랑이 많고 가족의 아픔을 감싸 안는 지혜로운 인물이다.
드라마 속 ‘엄마’ 이야기
그동안 다양한 캐릭터의 엄마를 연기했지만 이번 ‘선옥’이라는 인물은 그녀에게 특별한 ‘엄마’로 기억된다고 한다. 드라마는 끝났어도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선옥처럼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전에 내가 맡은 엄마 역은 사회에서도 한 부분의 엄마, 차별된 엄마였어요. 대부분 중산층 이상, 하이클래스인 사회에서의 엄마로 거기서 갈등을 겪는 엄마였는데 이번 선옥이라는 인물은 남을 위해 배려하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있는 여자, 사람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엄마죠. 요즘 세상에 희생이란 걸 잘 안하고 개개인의 삶을 추구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지금 2,30대의 엄마들만 해도 많이 다르잖아요?”
그녀는 선옥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은 시간이었다고 한다.
“최현경 작가님이 사람 심리를, 이 사람과 이 사람 관계에서의 심리, 저 사람과 저 사람 관계에서의 심리를 그런 것을 얼마나 잘 그렸는지... 연기하는 우리도 대사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하고 워낙 작품이 좋아서 연기자들도 빛이 나지 않았나 싶어요”
그녀는 이웃집 웬수를 집필한 작가와 작품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
“요즘 드라마가 다들 강하잖아요. 자극적이고... 그게 시청률하고 관계가 있지만...우리 드라마는 정말 마니아들이 보는... 처음부터 꾸준하게 왔어요.”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극중 선옥을 보고 실제 그녀를 보는 거 같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녀의 성격도 보여지는 이미지와 달리 긍정적이고 밝은 편이라고 한다. 또 될 수 있으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하니 선옥이라는 배역에 그녀가 자연스럽게 투영된 것이리라.
그녀는 최근 종영한 ‘이웃집 웬수’ 촬영을 마치고 드라마 때문에 미뤄뒀던 일들을 하나씩 정리하면서 친구들도 만나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연기 인생 43년은 꾸준함이 가져다 준 선물
정재순은 43년이라는 시간을 한결 같은 모습으로 꾸준히 연기자의 길을 걸어왔다. 1968년친구 권유로 탤런트 시험에 응시했다가 합격해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됐고 결혼 후 2,3년을 제외하곤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꾸준히 활동을 계속해왔다.
“처음엔 자신도 없었고... 어떤 탈출구로 시험을 봤는데 됐어요. 연기엔 관심도 없었는데 친구가 권해서 했죠. 1200대1인가 그랬던 것 같아. TBC 공채였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어.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있는 거는 잘 몰랐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내가 깨어있고 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면 못 견디고 그만뒀을지도 몰라요”
어려서부터 화가가 꿈이었던 그녀는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그림을 포기해야 했다. 탈출구가 필요해서 연기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 시작한 배우 생활이 43년간 계속됐다. 그녀의 동기들이 대부분 배우 생활을 그만 둔 지금도 그녀가 연기를 계속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연기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고 한다.
얼핏 들으면 연기에 대한 열정이 없었던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한때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몰래 출연을 했다가 방송이 나가고 나서야 남편이 알게 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한 작품 끝나면 그만 둬야지 하면서도 배역이 들어오면 그냥 하게 되고 그렇게 걸어 온 배우의 길이 43년이라는 시간이 되었고 꾸준히 성실하게 자기 길을 걸어 온 결과가 아닐까.
“연기자의 길이란 게 힘들어요. 스타가 아닌 다음에는 많이 기다려야 하고. 나 자신보다 연기가 우선이어야 하는데 그게 캐릭터에 몰입해야 하니까. 그리고 배역을 맡아 연기하는 동안에는 개인적인 일은 일단 미뤄둬야 하거든”
연기에 대한 욕심도 없었고 쑥맥 같았다고 스스로를 평하는 그녀지만 이 말에서 그녀가 어떤 태도로 그동안 연기에 임하고 어떤 연기자로 살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금방 뜨거웠다 금방 식어 버리는 냄비보다 서서히 끓어오르고 열기가 오래가는 뚝배기처럼 그녀의 연기는 특별한 무엇이라기보다 생활이고 일상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림
그녀는 이미 여러 미술전에서 입상을 했고 지난 2008년에는 다섯 번째 개인전을 가졌을 만큼 실력 있는 화가이다. 그녀는 삶과 자연이라는 테마를 화폭에 담는데 미술평론가 김종근씨는 그녀의 그림에 대해 ‘자연의 풍경을 거침없이 화면에 전이된 심상적 풍경으로 그려 낸다’고 평했다.
“90년에 김수현 작가의 배반의 장미를 했는데 극중에서 개인전을 했어요. 실제 그때 내가 첫 번째 개인전을 했는데 그걸 알고 작가가 기획한 것 같아요. 굉장히 재밌게 잘 됐어요”
연기가 힘들었을 때 다시 시작한 그림. 한때 그녀는 화가로써의 길도 같이 가려고 했다. 그림은 그녀에게 또 다른 희열을 안겨 줬다. 창작할 때의 고통은 힘들지만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을 화폭에 표현하고 작품이 완성되면 힘든 만큼 희열을 느꼈다.
그렇게 네 번째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그러나 엄마의 깃발, 사랑의 기쁨, 바람의 아들 세 작품을 동시에 하면서 전시회 준비를 하는데 직업에 대한 정체성에 혼돈이 찾아왔다. 그때 알았다. 두 가지 일에서 프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둘 다 잘하고 싶었던 욕심은 내려놓고 연기자로써의 길에 집중했다. 그림은 혼자서 하는 일이라 언제 해도 된다는 생각에 한 발 물러나 편하게 즐기면서 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5년동안은 전시회를 갖지 말자 했던 것이 12년이 가고 말았다.
2008년 12년 만에 다섯 번째 개인전을 가진 그녀는 다시 그림을 그린다. 최근 인사동과 마석의 한 미술관에서 그룹전도 가졌다. 그녀에게 그림은 연기를 하는 중간 중간 환기를 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조용하면서 차분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그녀가 그린 그림의 색채만큼 강렬하게, 힘차면서도 치밀한 붓놀림처럼 자신을 삶을 가꿔온 중견탤런트 정재순은 꾸준하고 성실한 연기자로 내일 또 카메라 앞에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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