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투데이 박미라 기자] 인공지능 '알파고'와 대결 이후 제2의 전성기를 맞은 프로기사 이세돌 9단이 바둑계의 불합리한 제도를 비판하며 정면으로 맞섰다.
이세돌 9단은 프로기사회의 불합리한 제도에 동조할 수 없다며 친형인 이상훈 9단과 함께 탈퇴서를 제출했다.
보통 프로에 입단하면 자동으로 가입되는 프로기사회에 탈퇴를 선언한 기사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세돌 9단 형제는 ▲프로기사회가 탈퇴 회원이 한국기원 주최·주관 대회에 참가할 수 없도록 하고 ▲회원의 대국 수입에서 3∼15%를 일률적으로 공제해 적립금을 모으는 정관 조항에 문제를 제기했다.
조항을 살펴보면 이세돌 9단과 같이 상금을 많이 획득하는 기사가 평균적으로 기사회 적립금에 많은 기여를 하는 구조다.
이 외에도 기사회 정관에 문제점이 많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세돌 9단은 20일 더플라자호텔에서 맥심커피배 우승 시상식을 마친 자리에서 취재진에게 "기사회 적립금 문제는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정관 자체를 완전히 뜯어 고치다시피 해야 한다"고 탈퇴라는 강경책을 내놓은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현재 프로기사회는 이세돌 9단의 탈퇴를 최대한 막고 대화로 원만하게 풀어간다는 입장이지만 이세돌 9단은 "대화로 풀어나갈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이걸 어떻게 풀어가겠느냐. 사실상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양측의 팽팽한 신경전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번처럼 이세돌 9단이 바둑계에 파장을 일으킨 것은 처음이 아니다. 이 9단은 과거에도 전에 없었던 보이콧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제도 개선을 이끈 전력이 있다.
정규 승단대회를 통해 3단으로 승단한 1993년, 16살때였다.
당시 대국료도 없이 별도로 연간 10판씩 소화해야 하는 승단대회는 '실력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이 9단은 이후로 대회에 참가하지 않는 뚝심을 보였다.
그는 3단에 머무르면서도 지난 2000년 제5기 박카스배 천원전에서 생애 첫 우승컵을, 2002년 제15회 후지쓰배 세계바둑선수대회에서 생애 첫 세계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03년 1월 이른바 '이세돌 특별법'이라는 제도개혁에 나선 것이다.
일반기전을 승단대회로 대체하고 주요대회 우승시 승단을 시켜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이후 전성기를 맞은 그였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프로바둑계 '1인자'로 올라선 지난 2009년에도 프로기사회와 마찰을 겪었다.
당시 그는 한국바둑리그에는 불참하고 중국리그에 참여하려 했고, 기사회는 이런 이세돌 9단에게 징계를 가하려 했다.
이에 이세돌 9단은 한국기원에 '휴직계'를 제출하고 잠적하는 초유의 일을 냈다.
이 9단은 휴직이라는 방법으로 기사회의 한국리그 불참 저지를 거부했고 중국리그 대국료 일부를 기사회에 납부하면서 각종 시상식 불참에 대한 부정적 시선, 한국기원에 기보저작권 위임 등을 향한 불만도 표출했다.
이 9단은 이후 한국기원과 대화해 약 6개월 뒤인 2010년 1월 복귀했지만, 바둑계 관행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인 시각을 세상에 알렸다.
오랜만에 다시 한 번 기사회와 정면으로 맞선 이세돌 9단은 이번에는 베일에 싸인 기사회 정관을 수면 위로 끄집어냈다.
한국기원과 기사회는 정관의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그만큼 프로기사회는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세돌 9단은 "기사회 정관에 문제점이 많다. 기사회 적립금 문제는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그는 탈퇴 회원이 한국기원 대회에 참가할 수 없도록 한 조항이 2009년 자신이 휴직 파문을 일으킨 이후 일부 수뇌부의 주도 아래 추가된 것이라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그는 기사회가 프로기사의 '친목단체'에 불과할 뿐이라며 자신의 행보가 제동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강조한다.
기사회는 일단 기사회 정관은 최근까지 조훈현, 이창호 국수 등도 모두 준수해온 것이라며 역사성을 강조하면서도 "공제율 등 고쳐야 할 것이 있다면 총회나 대의원 회의 등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설득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세도 9단은 "완전히 뜯어고칠 수 있으면 뜯어고치는 게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지금의 기사회를 와해시키고 새로운 기사회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라며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세돌 9단으로 인해 다시한번 불어닥친 '바둑'에 대한 환호가, 이세돌 9단으로 인해 어찌 변화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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