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투데이 박미라 기자] '굿'을 통해 의뢰인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더라도 무속인을 처벌할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부(김성대 부장판사)는 28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무속인 한모(46·여)씨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한씨가 지난 2009년 10월부터 2011년 5월까지 총 9차례에 걸쳐 자신이 운영하는 점집을 찾아온 의뢰인들에게 2억6천440만원을 받고도 실제로는 굿을 하지 않았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1심이 "한씨가 실제로 굿을 하지 않았다고 볼 만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무죄를 선고하자 검찰은 항소심에서 공소장을 변경했다. 1심 공소장은 '한씨가 돈을 받더라도 굿을 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며 이 부분에 사기 혐의를 적용했지만 2심에서는 '설령 굿을 했더라도 원하는 바를 이뤄줄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는 부분을 추가했다. 검찰은 또 "한씨가 객관적·실질적 효험이 없는 굿이 마치 효험이 있는 것처럼 피해자를 속였다"고 설명했다.
1심에서 약속과 달리 굿을 하지 않은 점만 문제 삼았던 것과 달리 실제 굿을 했더라도 효험을 속였다면 죄가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실제로 한씨는 의뢰인들에게 "굿을 하지 않으면 부모님이 올해 사망할 수 있다", "삼신할머니한테서 아이를 점지받는 굿을 하라"며 굿을 권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은 "굿은 논리의 범주에 있다기보다 영혼·귀신 등 정신적이고 신비적인 세계를 전제로 성립된 것"이라며 "의뢰인이 어떤 결과 달성을 요구하기보다 마음의 위안이나 평정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판단했다.
또 "예외적으로 어떤 목적 달성을 조건으로 하는 경우라도 무속인이 그 목적을 달성하려는 주관적 의사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무속 행위를 행했다면 목적이 달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의뢰인을 기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무속인이 진실로 무속 행위를 할 의사가 없고 자신도 믿지 않으면서도 효과가 있는 것처럼 가장한 경우,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나 재산상 이익만을 목적으로 무속 행위를 가장해 의뢰인을 기망한 경우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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