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투데이 윤용 기자] 우병우(50)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이 22일 새벽 기각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의 핵심 인물들 중 장관급 5명을 구속했지만 수사기간 막판에 우 전 수석을 구속하는데는 실패했다.
특검팀은 지난해 12월 21일 공식 수사에 착수한 뒤 구속한 장관급 인사는 문형표(61) 전 보건복지부 장관(작년 12월 31일 구속), 김종덕(60)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1월 12일), 정관주(53) 전 문체부 1차관(1월 12일),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1월 21일), 조윤선(50) 전 문체부 장관(1월 21일) 등 5명에 달한다.
김기춘 전 실장, 조윤선 전 장관, 우병우 전 수석은 박 대통령의 신임을 토대로 핵심 실세로 통했다.
장·차관급은 아니지만,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경희(55) 전 이화여대 총장도 특검이 구속한 거물급 인사다.
이 같은 결과는 역대 특검이 도달하지 못한 기록이다.
기각 이유는 "영장청구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의 정도와 그 법률적 평가에 관한 다툼의 여지 등에 비추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였다.
박영수 특검팀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민정수석의 권한을 넘어서 공무원이나 민간인 인사에 압력을 넣고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가 있다고 봤지만, 재판부는 민정수석의 직무 범위를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박영수 특검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적용한 죄목은 4가지다.
형법상 직권남용, 직무유기, 특별감찰관법 위반,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위반(불출석에 따른 국회모욕죄)등이다.
이들 죄목의 법정형을 징역형 중심으로 보면, 직권남용죄가 5년이하의 징역,직무유기가 1년이하의 징역,특별감찰관법 5년이하의 징역,국회증언감정법이 5년이하의 징역형이다.
최고 법정형이 1∼5년인 셈이다.물론 이들 범죄도 가벼운 범죄가 아니지만,우병우라는 개인적인 특수성을 빼고 형량 자체만 놓고 보면 구속영장을 반드시 발부해야 할 만큼의 중범죄라고 단정하기는 힘들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다.
해당피의자가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을 가능성이 높으면 웬만해선 구속영장 발부를 자제하는게 오민석 판사 전임 기존 서울중앙지법 영장담당 판사들의 대체적인 경향이었다.
법정형이나 죄질을 고려했을 때 집행유예 가능성이 높으면 특수한 경우가 아닌 한 형소법상의 대원칙인 불구속 원칙을 더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최고 법정형이 5년이하의 징역형인 경우 한번만 작량감경을 받으면 집행유예 조건에 해당된다.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바로 이런 사례에 해당되는 셈이다.
오민석 판사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관련해 법원칙과 법원 관례에 따를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 있었는데,실제로 이런 결론이 난 것이다.
오민석 판사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국민정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결국 원칙에 따르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박영수 특검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위증죄 대신 청문회 불출석에 따른 국회모욕죄를 적용했는데, 이는 법정형이 위증죄에 비해 낮다. 이 점도 오민석 판사가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데 한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박영수 특검은 오민석 판사의 결정에 반발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가능성도 낮은 상태다.특검 활동시한이 연장돼 특검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보강 수사를 벌인다고 해도 추가적인 성과가 있을지도 미지수다.
업무수첩과 휴대폰 등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관련 증거가 대부분 사라진 상태여서 추가수사를 한다고 해도오민석 판사가 기각사유로 적시한 소명 부족을 극복할 가능성 자체가 낯아 보인다는 지적이다.
구속영장은 기각됐지만 수사과정에서 우 전 수석 자신에 적용된 범죄 혐의를 "박 대통령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했을 뿐"이라고 책임을 떠넘기는 발언을 했다.
우 전 수석은 앞선 특검 조사에서도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면 밑으로 내리고, 밑에서 보고가 올라오면 위로 올리는 '가교 역할'을 했을 뿐이었다"고 진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이 짊어져야할 혐의는 더욱 짙어졌다.
기각 판결을 내린 오민석 부장판사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우병우 전 수석의 대학 후배로, 연수원 기수로는 6년 차가 난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예비후보는 2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과 관련,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우 전 수석의 범죄행위에 대해선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다"며 "국민들의 법 감정에 비춰볼 때 (영장 기각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며 "특검이 더 철저하게 수사해서 우 전 수석을 정의의 심판대에 올려놔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만약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특검 연장을 거부하면 국회에서 특검 연장 법안을 직권상정해서라도 반드시 특검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같은 당 안희정 충남지사도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안 지사의 대변인인 박수현 전 의원은 "특검법을 연장해 수사 동력을 확보하고, 반드시 국정농단 사태의 실체적 진실이 규명돼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28일로 활동이 만료되는 특검으로서는 우 전 수석을 보강 수사해 영장을 재청구하기는 물리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특검연장 법안이 국회법사위에 상정된다 한들 국회 처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것이다. 법사위 통과 전망, 국회 본회의 처리 가능성 등 모두 산넘어 산이다. 국회를 통과해도 황교안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만일 야4당이 강행처리에 나설 경우 여야의 물리적 충돌도 배제할 수 없다. 여야 모두 부담이다. 더구나 강행처리는 보수층 결집 등의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야권은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법사위를 건너뛰고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할 수 있는 방안도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특검연장 법안을 직권상정하는 것. 다만 정 의장은 특검연장 필요성에 동의하면서도 직권상정에는 부정적이다. 실제 국회선진화법상 직권상정 요건은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상태 △의장이 각 교섭단체대표와 합의하는 경우로 엄격하게 제한돼 있다.
우여곡절 끝에 특검 연장법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마지막 관문은 남아있다. 바로 거부권 문제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를 둘러싼 법률적 논란이 있지만 황교안 대행이 특검연장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다. 물론 한국당 의석이 94석이라는 점에서 황 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해도 국회 본회의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재의결은 가능하다. 그러나 황교안 대행이 오는 28일을 넘겨 3월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특검은 이미 종료되고 만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기간 연장 요청을 즉각 승인하라는 야당 측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최후통첩일인 21일까지 "관련 법에 따라 면밀히 검토 중에 있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황 대통령 권한대행측은 지난 21일 오후 자료를 내고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 승인 요청에 대해서는 수사 진행상황을 지켜보면서 관련 법에 따라 면밀히 검토 중에 있다"고 짧은 입장만을 밝혔다.
또 "특별검사법은 수사기간 연장 승인 요청은 수사기간 만료 3일 전에 행해져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며 "이번 수사기간 연장 승인 요청서는 수사기간 만료 12일 전인 16일 청와대에 접수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황 권한대행은 특검의 기간 연장 요청이 있었던 지난 16일에도 같은 내용의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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