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투데이 박미라 기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찬성하도록 국민연금공단을 압박한 혐의로 기소된 문형표(61)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게 법원이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홍완선(61)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도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조의연)는 8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문 전 이사장과 홍 전 본부장에게 이 같이 선고했다.
재판부는 "문 전 이사장은 복지부 조모 국장에게 삼성물산 합병이 성사됐으면 좋겠다고 말해 사실상 의결권행사에 개입하도록 지시했다"며 "복지부 장관이었던 문 전 이사장은 복지부 공무원을 통해 기금운용본부에 압력을 행사해 독립성을 보장하는 국민연금공단의 개별의결권 행사에 개입했다"고 밝혔다.
이어 "문 전 이사장은 스스로 연금 분야 전문가면서 복지부 공무원들을 통해 국민연금공단에 영향력을 행사해 기금 운용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국민연금기금에 주주가치 훼손이라는 손해를 초래한 점에서 비난 가능성과 불법성이 크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당시 문 전 이사장은 메르스 사태 해결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던 상황이었다"며 "외국 투기자본에 의한 국부 유출 논란으로 국민연금공단이 이른바 '흑기사' 역할을 해야한다는 여론도 상당했던 관계로, 주식 의결권 행사 기준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경솔하게 판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문 전 이사장은 잘못을 자책하고 있다"라며 "복지부 공무원들이 기금운용본부의 의사결정에 여러 차례 개입해 지시하는 과정에서 문 전 이사장이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측면도 일부 있다"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홍 전 본부장에 대해서는 "피해액을 산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혐의가 아닌 업무상 배임죄로 보고, 유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홍 전 본부장은 부하 직원에게 합병시너지 자료를 조작하게 한 후 투자위원회에서 설명하게 하고 일부 위원에게 합병 찬성을 권유해 결국 합병 안건이 투자위에서 찬성됐다"며 "배임이 인정되며 이로 인해 공단은 재산상 이익을 상실했고, 반면 이재용 부회장 등은 재산상 이익을 얻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홍 전 본부장은 법령과 내부 지침을 준수해 주식 의결권을 행사해야 하는 책무가 있음에도 기금 운용의 원칙을 저버렸다"라며 "여러 부당한 방법을 동원해 기금에 불리한 합병 안건에 찬성을 이끌어 냈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홍 전 본부장의 범행으로 국민연금공단은 삼성물산 합병에 관한 캐스팅보트(결정권)를 상실하고, 보유주식 가치가 감소하는 등 손해를 입게 됐다"라며 "불법성이 큰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문 전 이사장은 선고를 마친 뒤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홍 전 본부장은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자 눈시울이 붉어진 채 교도관에 이끌려 법정을 나섰다.
문 전 이사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 2015년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안건을 '국민연금 주식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가 아닌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다루고 찬성하도록 압박한 혐의로 기소됐다.
홍 전 본부장은 문 전 이사장 지시에 따라 투자위원회 위원들에게 합병에 찬성하도록 요구하고 관련 분석 자료를 조작하는 등 국민연금공단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 과정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변호인 측은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해서 박 전 대통령의 지시 여부, 이 부회장의 부정한 청탁 여부 등을 두고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
지난 5월 열린 결심 공판에서 특검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씨 간의 뇌물수수 사건 핵심은 바로 삼성 합병 건"이라며 "이같은 범행이 재발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중형 선고가 필요하다"라며 문 전 이사장과 홍 전 본부장에게 각각 징역 7년을 구형했다.
문 전 이사장은 최후진술에서 "삼성 합병과 관련해서 박 전 대통령이나 다른 외부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라며 재판부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홍 전 부장 역시 "삼성 합병에 찬성해 국민연금공단이 입었다는 손해는 손실이 아니라 편차"라고 혐의를 극구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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