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투데이 이윤지 기자] 한 마디로 딱 ‘예술가’이다! 패션·미술계 평단에선 그를 ‘대한민국 1세대 남성 디자이너이자 전위예술가’로 일컫는다.
재밌는 건 틀이나 형식에 메이는 걸 싫어하는 삶의 자세다. 80세 가까운 지금도 ‘철들기 싫다’고 했다. 일생을 관습보다 개성, 허례허식이 아닌 소신껏 살았으니 앞으로도 그러길 원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태어날 때부터 DNA가 달랐다”고 했다.
바로 ‘노랑다리미술관 손일광 관장’의 얘기다.
그야말로 이름의 ‘광’자가 무슨 뜻일까 싶은 기인, 작품과 미술관을 대하면 ‘빛’으로 해석되는 ‘천생 예술가’였다. 자유분방함이 손 관장의 예술세계를 관통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고정관념의 탈피이지, 시민사회 탈선이 아니다. 친절하고, ‘쿨’하며, 젊다! 일례로 “패션은 특정계층의 소유물이 아니다”면서 1970년 국내 최초 ‘길거리 패션쇼’를 연 것도 그다.
이런 손 관장은 1968년 ‘대한민국 제1회 무역박람회, 의상 콘테스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해 서울 명동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A.G(아방가르드) 의상실’도 오픈했다. 이후 다양한 패턴과 디자인 등으로 패션산업을 리드하며, 후배양성에도 힘쓰다 1988년 ‘역시 그다운 장면’이 나왔다.
88서울올림픽 개막행사의 초대 디자이너로서 발표한 ‘로봇 의상’에 세상이 놀랐다. 이제와 보니 손 관장의 무한 상상력과 창의성이 몇 십 년을 앞섰고, 현재라면 ‘패셔너블한 아이템·기능성·소재’ 등으로 극찬 받았을 거다.
또한 그는 한국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설치미술의 뉴-패러다임을 열고, ‘제4집단’ 핵심멤버로 전위예술·행위예술 장르도 개척했다. 특히 ‘제4집단’은 손 관장과 김구림 화백, 방태수 교수, 정찬승 선생, 정강자 화백 등이 ‘가두 마임극’, ‘기성문화예술의 장례식’ 등 사회 부조리를 꼬집는 퍼포먼스로 연일 이슈였다.
장발과 미니스커트까지 단속하던 권위적 시대, 젊은 그들의 전위예술이 ‘윗분’ 눈에 고울 리 없었다. 반사회적 행위로 치부, 제재와 감시로 ‘제4집단’은 막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반면 현대미술사에선 “제4집단이 국내 전위예술의 원류”라고 회자된다.
그러다가 손 관장의 ‘화려한 컴백’은 ‘인견사랑’과 함께였다. 풍기인견의 고부가가치 창출에 불씨를 당긴 ‘인견사랑’은 ‘의상 디자인, 패턴, 제작, 봉재, 염색, 마감’ 등 전반이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옷을 먼저 만든 후 염색하는 방식부터 패턴, 촉감, 색상 등이 차별화됐고, 수년 간 실험과 투자 끝에 완성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처럼 ‘아방가르드’한 삶과 예술관, 독창적이면서 대중성도 갖춘 걸작 등 ‘손일광 세계’가 2016년 가평의 ‘노랑다리미술관’으로 집결됐다. 미술관 겸 박물관이고, 건물 자체가 설치예술의 진수를 보여준다. 100여점 이상의 작품을 전시하며, 카페와 야외소공원 등도 갖췄다.
손일광 관장은 “돈과 명예보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사는 것’이 성공한 인생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며 자신은 “항상 유연한 사고를 갖고 새로움을 추구하며 살았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철들지 않겠다. 즉,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란 손 관장의 향후 행보가 기대된다.
한편, 노랑다리미술관 손일광 관장은 ‘대한민국 1세대 남성 디자이너 및 전위예술가’로서 섬유·패션산업과 문화예술 진흥에 헌신하고, 패션의 행위예술화 및 인견소재 고부가가치화를 이끌며, 미술·설치예술 발전과 미술관 가치제고 선도에 기여한 공로로 ‘2018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시사투데이 주최·주관)’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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